[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나비 날갯짓 같은 게르기예프의 지휘… 연주자는 어떻게 알아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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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게르기예프
발레리 게르기예프
무대 위의 ‘지휘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휘자가 어떻게 음악을 만들어내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단 한 음표도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손끝만으로 어떻게 수많은 연주자를 이끌 수 있을까요?

전문 음악인들도 이에 생각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교향악단 지휘 경력이 있는 음악평론가 톰 서비스는 ‘마에스트로의 리허설’이라는 책에서 한 지휘 교실 풍경을 소개하며 개탄합니다. 4분의 4박자는 이런 도형을, 8분의 6박자는 저런 도형을 그리듯이 박자를 저으라는 식인데, 이런 걸 가르치는 일이 진정한 지휘 기술을 익히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손으로 정확한 동작을 그린다고 해서 연주자들이 정확하게 따라 연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휘자가 연주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손짓’보다 훨씬 신비한 차원을 가집니다. 지휘자 오토 클렘퍼러가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다른 지휘자가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소리가 확 달라져 놀랐던 경험을 회상합니다. 클렘퍼러가 문을 열고 나타났던 것입니다.

지휘자의 역할에 대해 가장 혼란스러운 느낌을 갖게 만드는 인물로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감독이자 독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인 발레리 게르기예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지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연주자들이 맞춰 나갈 수 있는지 혼란스럽습니다. 계속 손을 나비 날갯짓처럼 팔랑팔랑 떠는 것이 그의 지휘 포즈입니다. 3박자, 4박자, 6박자의 도형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이끄는 연주는 충분히 정밀하고 열광적인 것으로 정평이 있습니다. 비결은? 일부 연주자는 “지휘 동작이 정밀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된다”며 웃는다고 합니다.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과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협연하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비창’을 연주합니다. 게르기예프의 내한은 2012년 이후 3년 만입니다. 엄밀하지 않은 그의 비트가 이번에는 어떤 불꽃같은 순간들을 만들어낼지 궁금합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게르기예프#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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