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함인희]“천만 관객 영화, 우리도 보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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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영화는 자막 제공… 청각장애인도 즐길수 있는데 한국 영화는 ‘그림의 떡’
우리 사회 소수를 위한 배려는 많고 적음을 넘는 가치의 문제
매달 문화의 날 하루라도 자막 영화 상영관 운영했으면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천만 관객 영화, 우리도 보고 싶습니다.”

요즘 휴대전화는 ‘내 손 안의 컴퓨터’로 눈부시게 진화했지만 휴대전화가 출현하던 초창기엔 편리한 전화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다. 당시 대학생을 상대로 원하는 휴대전화 기능이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실시해본 결과 도서관 검색기능이란 모범답안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이 결과에 의구심을 품고 다시금 심층 인터뷰를 시도해 보니 ‘애인 위치 추적 기능’이란 속내를 드러냈다고 한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던가. 간절한 수요자층을 확보하고 있던 휴대전화 위치 추적 기능은 이젠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휴대전화 화상통화 기능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일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연인? 아니면 손주를 그리워하는 조부모가 아닐까 싶었는데, 언제 어디서나 얼굴을 마주한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진정한 수혜자로 부상한 이들은 다름 아닌 청각 장애인들이라고 한다. 이유인즉, 수화(手話)에는 우리글의 조사(助詞)에 해당하는 표현 방식이 없기에, 멀리 떨어져 있어 문자메시지로 소통해야 할 때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데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어 왔다는 것이다.

이제 화상통화가 보편화되면서 화면을 통해 상대방의 얼굴과 손을 보며 수화로 소통하는 것이 가능해짐에 따라 각자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정확하게 전할 수 있게 되어 피차 오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의외의 기분 좋은 반전(反轉)인 셈이다.

한데 우연한 기회에 청각 장애인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직접 전해들을 기회가 있었다. 요즘 한국영화 중엔 천만(千萬) 이상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중적 인기몰이에 성공하는 영화들이 즐비한데 정작 청각 장애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라는 이야기였다. 할리우드 SF 영화든 중국 무술영화든 외국 영화는 자막(字幕)이 함께 나오기에 청각 장애인들도 영화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는 반면에 자막 서비스가 없는 한국 영화는 청각 장애인들로서는 그저 지루하고 재미도 없는 영화로 인식되곤 한다는 것이다.

아주 가끔씩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상영관을 한 곳 정해서 일정 시간에 자막을 넣은 한국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기회는 어쩌다 한 번 오기에 대부분은 보고 싶은 한국 영화가 있어도 그냥 꾹 참고 지나간다는 사연이었다.

우리나라 청각 장애인 수는 대략 30만 명 내외로 추정되는데 이 중엔 구화(口話)로 소통이 가능한 이들도 있고, 영화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 미성년자도 있는가 하면, 시력이 나빠 영화관을 찾지 않는 노인들에, 영화에 무관심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결국 몇 안 되는 청각 장애인을 위해 한국 영화에 자막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반대 의견도 있고, 만일 청각 장애인을 위한 전용 영화관을 만든다 해도 수익성이 보장되겠느냐는 실용적 의견도 들려온다.

하지만 최근엔 선천적 장애 못지않게 사고나 재해로 인해 후천적으로 장애인이 되는 일도 빈번해졌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요, 소수자를 위한 배려는 숫자의 많고 적음을 뛰어넘는 가치의 문제라는 사실도 기억할 일이다. 장애인을 위해 편리한 곳에 주차 공간을 마련하고 지하철마다 장애인용 리프트를 설치하듯 청각 장애인을 위해 한국 영화에 자막을 넣는 일은 시각 장애인을 위해 점자책을 발행하는 일과 더불어 소수를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의 징표 아니겠는지.

도대체 어떤 영화이기에 천만 명이나 보았을까, 호기심도 가득하고 관심도 크거늘, 영화를 보며 줄거리를 이해하고 메시지에 공감하고픈 그들의 절실한 마음을 향해 누군가는 ‘응답’해 주어야 할 것 같다.

물론 한글 자막 서비스를 하려면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이요, 상영관의 수익성 문제도 고려되어야 마땅한 만큼 이 작업은 공공성을 담보한 기관에서 주관하는 것이 순리이리란 생각이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만이라도 청각 장애인들을 위해 한국 영화 자막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상영관이 하나둘 생긴다면 참으로 뿌듯할 것만 같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천만 관객 영화#청각장애인#자막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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