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못할 사정들

  • Array
  • 입력 2015년 11월 16일 17시 06분


코멘트
인터넷을 보다 보면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새주인을 찾는다는 내용의 글이 종종 눈에 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할 것을 왜 키웠느냐는 주장도 있지만 사람 사는게 어디 그렇게 쉽나.

어릴 적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집에서 기르던 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님께 여쭤 보니 삼촌 다니는 공장에 보냈다고 하셨다.

나는 개가 너무 보고 싶어 삼촌이 일한다는 공장에까지 버스를 타고 어떻게어떻게 해서 찾아갔다. 어머님 말씀과는 달리 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집은 발칵 뒤집어졌고, 어떻게 연락이 닿아 삼촌이 나를 데리러 와서 일이 마무리됐다.

사실 그 개는 공장에 간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만 해도 개가 사라졌을 때 어른들이 흔히 하던 말은 '시골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시골로 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고 아마도 보신용으로 희생당한 것이 대부분일 꺼다.

다행히 지금은 보신 문화가 야만적이라는 생각들이 퍼지면서 그런 일은 많이 줄었다. 대신 요새는 인터넷에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새주인을 찾는다는 글이 올라 온다.

가장 흔한 '피치 못할 사정'은 집에 아이가 생겼다는 것일 듯싶다.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로는 집에서 개나 고양이와 함께 자란 아이가 더 건강하다. 면역력이나 천식 발생 가능성 등에서 함께 생활하지 않은 아이들보다 더 나은 것으로 나온다. 정서적 교감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눈앞에서 털이 날리고 구석구석에 털뭉치가 이리저리 뒹구는 것을 보면서 좋아할 어른들은 많지 않은 것같다. 게다가 혹 개가 아이를 질투해서 공격하지는 않을까 하는 어른들의 생각도 꺾기 어렵다.

어찌보면 개는 밖에서 잔반으로 먹여 키우는 동물이며 때로는 보신용으로 키운다는 옛생각과 개는 반려동물이라는 생각을 가진 새로운 세대의 인식 차이에서 아직은 옛생각의 힘이 더 센 것같다.

비슷한 이유로 '결혼하는데 상대방 집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아서' '집안의 누가 아파서'라는 이유도 피치 못할 사정 순위를 매긴다면 상위에 든다.

최근 들어서는 이사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요새는 혼자 사는 젊은 친구들이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잘 알다시피 부모님이 웬만한 재력가 아니고서는 대부분 월세나 가끔은 전세로 산다. 이래서 이사는 무시못하는 변수가 되고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것같다. 집주인의 성화에 못 이겨서 이사를 간다는 사연이 종종 올라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 아들이 군대를 가서, 혹은 딸이 유학을 가서 등등 피치 못할 사정은 셀 수 없이 많다. 피치 못할 사정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사정도 너무 손쉽게 피치 못할 사정이 되는 것은 아닌지.

인터넷 상에서는 피치 못할 사정을 분양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악덕업자들도 있고, 키우던 개가 그냥 싫어져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핑계대는 이들도 있다.

사람도 같이 살다 헤어지는 세상이니 끝까지 책임져라 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은 사람의 품을 떠나 살아갈 수가 없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어도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하시길 바란다.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