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의 시의 눈]굴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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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 ―오탁번(1943∼)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장수가 지나갔다
-굴비 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 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장수가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보았다
-그거 한 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 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 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짝 없는 굴비장수와 돈 없는 산골 아낙이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보통은 별일이 안 생긴다. 남의 여자와는 내외를 해야 하고 남의 물건엔 공짜로 손대선 안 되니까. 하지만 사건이 안 나면 이야기가 안 되고, 이야기가 없으면 세상살이가 팍팍해진다.

겉만 보면 이 시는 빈곤과 성적 빈곤의 값싼 교환 과정에 불과하다. 어수룩한 인물들의 상식을 벗어난 말과 행동이 음담의 희극성을 높여준다. 하지만 작품이 그저 풍자의 나락에 떨어지는 건 아니다. 이야기가 아이의 눈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어른의 세계를 모르는 어린아이가 되어 궁핍과 매음이라는 착잡한 현실을 ‘방법적으로’ 지워낸다. 그래서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라는 능청도, ‘앞으로는 안 했다’는 말놀이도 다 즐길 만한 웃음으로 변형된다. 여기엔 숨김도 속임수도 없다. 문학의 이 대리 충족 기능에 의해 원초적 생존 현실은 원초적 사랑으로 승화된다.

물론 이 시가 잠깐의 웃음에 그치는 건 아니다. 에로스는 살고 사랑하자는 본능이다. 이걸 억압하면, 인간은 탈이 난다. 사회가 사회답게 유지되고 문명이 제 길을 가려면 말은 좀 하게 해야 하고, 억압은 좀 줄여야 한다. 나는 이 글을 광화문 근처 찻집에서 쓴다. 경찰차에 가려 거리와 광장이 안 보인다. 답답하다.

이영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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