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경제]힘 좋고 오래가고… 이젠 ‘휘어지는 배터리’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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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산업의 심장’ 배터리, 어디까지 왔나

지난달 20∼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15’ 전시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제품은 ‘휘어지는 
배터리’였다. 삼성SDI는 두께 0.3㎜에 불과한 스트라이프 배터리를 처음 선보였다(위 사진). LG화학도 마치 실처럼 구부러지는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미래형 배터리를 이번 전시회에 대거 내놨다. 삼성SDI·LG화학 제공
지난달 20∼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15’ 전시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제품은 ‘휘어지는 배터리’였다. 삼성SDI는 두께 0.3㎜에 불과한 스트라이프 배터리를 처음 선보였다(위 사진). LG화학도 마치 실처럼 구부러지는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미래형 배터리를 이번 전시회에 대거 내놨다. 삼성SDI·LG화학 제공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 ‘인터배터리 2015’ 행사장. 150여 개 부스마다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특히 국내 배터리 업계 ‘양 강’인 삼성SDI와 LG화학 부스는 한순간도 관람객이 끊이질 않았다.

삼성SDI는 부스를 도시생활, 가정, 옥외로 구분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배터리들을 배치했다. 관람객들이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둘러보다 예외 없이 시선을 주목시키며 꼼꼼히 살펴보는 게 있었다. ‘휘어지는 배터리’였다.

삼성SDI는 스트라이프(Stripe) 및 밴드(Band) 배터리를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 선보였다. 스트라이프 배터리는 섬유처럼 자유자재로 구부릴 수 있다. 행사 도우미가 “두께가 0.3mm에 불과해 앞으로 목걸이, 헤어밴드, 티셔츠 장식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밴드 배터리는 스마트워치용으로 만든 것이다. 겉보기에는 일반 시곗줄과 똑같은데 속에는 배터리가 내장돼 있다. 기존 스마트워치 줄을 밴드 배터리로 바꾸면 스마트워치 사용 시간을 50% 이상 늘릴 수 있다. 삼성SDI 측은 “사람 손목 둘레 수준의 곡률 범위 내에서 약 5만 번 이상 굽힘 테스트를 했다. 그래도 정상적으로 작동해 충분한 상품성을 갖췄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인터배터리 2015’ 전시회에서 인기를 끈 제품들. 왼쪽부터 휘어지는 배터리가 내장된 헤드폰, 배터리로 만든 시곗줄, 전기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전기자동차.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인터배터리 2015’ 전시회에서 인기를 끈 제품들. 왼쪽부터 휘어지는 배터리가 내장된 헤드폰, 배터리로 만든 시곗줄, 전기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전기자동차.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LG화학 역시 이번 전시회 출품작 중 휘어지는 배터리에 가장 힘을 쏟았다. 대표 상품은 손목 밴드형 와이어(Wire) 배터리. 이 제품은 LG화학이 2013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전선 형태의 와이어 배터리를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기존 와이어 배터리는 사람 손목에 감기는 수준으로 구부러졌지만 이번에 선보인 제품은 거의 절반으로 접을 수 있다. LG화학 측은 휘어지는 배터리 개발로 스마트워치 사용 시간을 최대 2배로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가 전자기기의 ‘두뇌’, 디스플레이가 ‘얼굴’이라면 배터리는 전자기기에 전력을 공급하는 ‘심장’에 비유된다. 그런 배터리의 진화가 눈부시다. 카세트테이프에 넣어 한 번 쓰고 버리는 배터리에서 수시로 충전 가능한 배터리로 진화했다. 이제는 손목에 차거나 의류에 적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 배터리’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삐삐 사라지게 한 리튬이온 배터리

‘8282’, ‘1004’…. 전 국민이 무선호출기(일명 삐삐)를 통해 숫자로 소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공중전화 앞에선 삐삐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늘어선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삐삐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삐삐를 없앤 주역은 널리 알려진 대로 휴대전화다. 하지만 숨은 조력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바로 ‘리튬이온 배터리(2차 전지)’다. 1차 전지는 한 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를, 2차 전지는 재충전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를 말한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휴대전화 성능을 높여주면서 휴대전화가 급속도로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2차 전지는 휴대전화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친숙해졌지만 사실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지금도 자동차 등에 널리 쓰이는 납축전지는 1890년에 최초로 상업화됐다. 납축전지는 부피도 크지만 황산이 들어가 있어 안전성도 좋지 않았다. 들고 다니기 불편했고 값도 비쌌다.

1960년대에 니켈-카드뮴 배터리가 나왔고, 80년대엔 니켈-망간 배터리가 등장했다. 이 배터리들은 납축전지가 진입하기 힘든 소형 휴대기기 영역을 빠르게 점령했다. 워크맨이나 카메라에 넣던 충전식 배터리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대용량에는 적합하지 않았고, 환경에 유해한 중금속으로 만들었다는 단점이 있었다. 최근 들어선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2차 전지의 역사는 1991년에 대전환을 맞게 된다. 일본 소니가 리튬이온 배터리를 선보인 것이다. 이 배터리는 기존 2차 전지에 비해 가벼우면서 같은 부피에 더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었다. 전압과 출력이 높아 강한 힘을 필요로 하는 분야(자동차 등 이동수단이나 전동공구)에도 쓰일 수 있었다. 카드뮴, 납 등 유해물질도 없어 친환경 배터리로 분류됐다. 그 후 배터리 시장은 2차 전지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일상생활에 파고든 배터리

현대 일상생활은 배터리와 점점 연결되고 있다. 스마트폰, 노트북 등 전자기기 외에도 생활 곳곳에서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제품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배터리의 용량은 매년 커져 왔다.

국내에 1998년 10월 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던 모토로라의 휴대전화 ‘스타택’의 배터리 용량은 기본형이 400mAh(밀리암페어아워)에 불과했다. mAh는 배터리 용량을 표시하는 단위로 1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최대 전류량을 뜻한다. 예를 들어 10mAh라면 완전 충전했을 때 시간당 10mA의 전류를 1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숫자가 클수록 용량도 크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

2010년 출시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에는 1500mAh의 배터리가 기본으로 장착됐다. 이후 매년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배터리 용량이 약 15%씩 커져 올해 4월에 출시된 S6는 2550mAh다.

배터리는 전력선을 없애줘 삶의 질을 혁신적으로 높였다. 로봇 청소기는 켜놓기만 하면 구석구석 청소하고 배터리가 다 되면 스스로 충전덱으로 돌아간다. 핸디형 청소기들도 대부분 무선 제품들인데 가볍고 강한 흡입력을 위해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가구를 직접 만드는 열풍이 불면서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한 가볍고 강한 전동공구들도 시장에 많이 나왔다. 전동 드라이버나 핸드드릴의 경우 여성들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무게가 가볍다. 전문가용 전동공구들도 점차 리튬이온 배터리를 장착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캠핑, 등산 등 아웃도어 문화가 확산되면서 야외용 무선 스피커가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운전이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블루투스 이어폰과 헤드셋도 나왔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아니었으면 이 같은 제품들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 레저 및 물류 용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드론도 대부분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

배터리 업계는 현재 전기차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 배터리 시장이 또 한 번 급팽창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2차 전지 시장은 올해 212억 달러(약 24조5000억 원)에서 2020년 63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시장 확대에 맞춰 배터리 시장도 연평균 20%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동안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에 들어가는 소형 2차 전지는 한국 업체들이 주도했다. 삼성SDI, LG화학 등 한국 업체들은 올해 2분기(4∼6월) 기준 43.4% 점유율을 보이며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에선 한일이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1∼9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1, 2, 3위는 모두 일본 업체로 파나소닉(34.4%), PEVE(12.2%), AESC(11.2%)다. 국내 기업인 LG화학(7.7%)과 삼성SDI(5.3%)는 5, 6위에 머물렀다. 파나소닉은 전기차 기업 테슬라와 거의 독점계약을 맺고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업체들의 공격이 만만치 않다. LG화학은 지난달에 중국 난징(南京)에서 축구장 3배 크기의 배터리 공장을 완공했다. 내년 초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LG화학은 현대·기아자동차는 물론이고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유럽 폴크스바겐, 르노, 다임러 등 20여 개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삼성SDI는 최근 롯데에 화학사업을 팔기로 했고, 지난해 태양광 사업까지 접었지만 배터리 사업은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향후 5년간 2조 원 이상을 투자해 생산라인을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도 지난달에 중국 시안(西安)에서 전기차 배터리 공장 준공식을 열고, 중국 현지 시장 공략에 나섰다.

국내 배터리 업계 양 강에 이은 ‘1중’ 역할을 하는 SK이노베이션 역시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 물량을 예전의 두 배로 확대하기 위해 올해 7월 충남 서산 공장의 증설을 마무리했다.



남은 과제들


리튬이온 배터리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몇 가지 과제도 안고 있다.

먼저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려야 한다.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노트북 등 정보기술(IT) 기기 이용자의 가장 큰 불만은 배터리 사용 시간이다. 제품 사양이 점차 고급화되면서 다양한 기능을 구현하다 보니 전력 소모량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배터리 업계는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리기 위해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작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에너지 밀도란 같은 부피나 무게 대비 배터리 용량을 뜻한다. 이를 위해 배터리 총부피에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부품이 차지하는 비율을 높이고 있다. 신소재 개발에도 주력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로 변형할 수 있는 배터리를 만드는 것도 과제다. 최근 스마트워치, 스마트안경 등 다양한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배터리 형태에 대한 시장의 요구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미 삼성SDI와 LG화학은 올해 인터배터리 전시회에 휘어지는 배터리를 선보일 정도로 실적을 내고 있기도 하다.

배터리 업체들은 궁극적으로 절대로 터지지 않는 배터리를 만들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최근 리튬이온 배터리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배터리 폭발 사고도 늘었다. 폭발 사고 대부분은 충격에 의한 것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음극과 양극이 분리막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는데 충격을 받아 분리막이 훼손되면 양극과 음극이 접촉해 폭발로 이어진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이런 폭발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고체 전해질을 사용할 경우 음극과 양극이 접촉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고, 중간에 놓인 분리막이 훼손되더라도 액체 전해질과는 달리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배터리#인터배터리 2015#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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