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의 법과 사람]박 대통령의 “다들 왜 그러신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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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수석논설위원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참 뜬금없다. 작년 10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중국 상하이에서 ‘개헌 봇물론’을 꺼냈다가 귀국하자마자 꼬랑지(꼬리)를 내린 게 엊그제 같은데 당시 그를 공격했던 친박(친박근혜)계가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정작 박 대통령은 보고를 받고 “아이고, 다들 왜 그러신대요”라며 혀를 찼다고 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니다.

나쁜 대통령과 무서운 대통령


그제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이 한 인터뷰에서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죽은 제도”라며 내년 총선 이후 개헌을 강조했다. 외치(外治)를 담당하는 대통령과 내치(內治)를 맡는 총리를 두는 이원집정부제도 언급했다. 1년 전 김 대표가 거론한 개헌 방향이다.

‘반기문 대통령-친박 총리’ 카드라는 점만 다르다. 친박 총리 후보에는 최경환 부총리와 황교안 총리 등이 거명된다. 최 부총리도 최근 개헌에 무게를 둔 발언을 했다. ‘실세 중의 실세’인 그의 말을 그냥 넘기긴 힘들다. 이인제 윤상현 의원도 한마디씩 했다.

정가에는 박 대통령의 퇴임 후를 대비한 밑도 끝도 없는 시나리오가 나돈다. 총선에서 30석 이상 ‘진박(眞朴) 세력’을 원내에 구축한 뒤 분권형 개헌을 하면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학자인 정종섭(행정자치부 장관)을 국회로 보내는 것도 ‘개헌 대비용’이라는 식이다. “장기집권 음모”라고 야당이 발끈한 이유다.

박 대통령은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했을 때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로 일축했다. 힘 빠진 대통령은 개헌을 시도할 수조차 없다. ‘87년 헌법’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모두 임기 5년 차에 여당을 탈당했다. 대권 경쟁의 조기 과열이 낳은 폐해다.

현행 직선제 헌법은 여러 가지 결함을 안고 있다. 단임 5년도 정략의 산물이다. 한 원로 헌법학자는 “집권에 눈이 먼 정치인들이 6년 단임(민정당)과 4년 중임(통일민주당)을 놓고 씨름하다 깊은 고민 없이 정했다”고 꼬집었다. 개정한 지 30년 가까운 현행 헌법은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3김 이후 박 대통령은 30%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한 유일한 정치인이다. 지금 박 대통령은 노동개혁과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때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렇다면 ‘개헌상자’의 봉인을 뜯은 친박 인사들에게 혀만 찰 게 아니라 경고의 레이저를 발사해 ‘무서운 대통령’의 면모를 보일 필요가 있다.

개헌론에는 정답이 없다. 개헌해야 하는 이유를 10가지 들면, 반대 이유도 10가지 들 수 있다. 지금은 청와대가 “정신 나간 소리”라고 일축하지만 총선 이후엔 달라질 수도 있다.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그러나 친박이 주도하는 개헌은 성공할 수 없다. ‘퇴임 후 대비’라는 정치적 동기로 오염되면 그 순간 개헌은 물 건너간다.


개헌 때 선진화법도 수술해야


대통령 중임제든 이원집정부제든 다 장단점이 있는 제도다. 총선 후 개헌을 추진한다면 언제 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최소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밀실 담합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나라 망칠 국회선진화법을 수술하려면 정치의 틀을 바꾸는 계기가 필요하다. 신뢰받는 대통령이라야 개헌도 할 수 있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
#친박계#홍문종#대통령 중임제#직선제#이원집정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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