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달라졌다, 자유를 느낀다”… ‘민주주의 서광’ 미얀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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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서광’ 미얀마, 김정안 기자 양곤市 르포 1信]
현지 기자 “軍 기사검열 느슨해져”

“연예인도 한마음” 수지 여사 축하 방문



11일 오전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 도심에 있는 아웅산 수지 여사 집 앞에는 이른 아침 시간부터 취재진과 시민들로 북적였다. 수지 여사가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미얀마 연예인들을 집으로 초청해 감사 인사를 하는 행사 때문이었다. 이들은 집 앞에 도착해 잠시 취재진에게 사진 촬영 포즈를 취한 뒤 집으로 들어갔다. 양곤=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연예인도 한마음” 수지 여사 축하 방문 11일 오전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 도심에 있는 아웅산 수지 여사 집 앞에는 이른 아침 시간부터 취재진과 시민들로 북적였다. 수지 여사가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미얀마 연예인들을 집으로 초청해 감사 인사를 하는 행사 때문이었다. 이들은 집 앞에 도착해 잠시 취재진에게 사진 촬영 포즈를 취한 뒤 집으로 들어갔다. 양곤=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김정안 기자
김정안 기자
30도를 웃도는 한국의 여름 날씨처럼 덥고 습한 12일 오전 9시 반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 도심에 위치한 술레 파고다 근처 바한 지역.

양곤에서 부촌으로 통하는 이곳에 아웅산 수지 여사의 자택이 있었다. 철제 대문 옆 양 벽에 있는 그가 이끄는 정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문패가 낯설지 않았다. 53년 만의 군부독재 청산이라는 새 역사를 쓰고 있는 ‘NLD’라는 이름을 외신을 통해 익숙하게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른쪽 벽 위로는 국기가 게양돼 있었고 대문 정면에는 수지 여사의 아버지이자 미얀마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 사진과 함께 생전 그가 남긴 명언 ‘국민과 나라만을 보고 냉철한 이성으로 전진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비교적 이른 아침 시간인데도 집 앞은 취재진과 시민 20여 명으로 붐볐다. 40대 남성을 붙잡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자 “수지 여사가 그동안 여사와 NLD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연예계 인사 250여 명을 초대해 감사 인사를 하는 행사가 오전 10시부터 예정돼 있다”고 했다. 총선 개표가 아직도 전국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수지 여사가 ‘압승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며 당선사례를 하는 것 같았다.

조금 서 있자니 정문 앞에 속속 승용차들이 등장하면서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미얀마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가수, 영화배우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정문 앞에서 잠깐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아웅산 수지 여사의 자택 대문. 그의 아버지이자 미얀마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사진과 그가 남긴 ‘국민과 나라만을 보고 냉철한 이성으로 전진하라’란 문구가 걸려 있다.
아웅산 수지 여사의 자택 대문. 그의 아버지이자 미얀마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사진과 그가 남긴 ‘국민과 나라만을 보고 냉철한 이성으로 전진하라’란 문구가 걸려 있다.
▼ 붐비는 수지 자택엔 “냉정히 전진하라” 유훈 ▼

영화사 관계자라는 코잉 툰 씨에게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하니 반갑게 웃으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미얀마 연예계의 90%가 수지 여사와 NLD를 지지한다고 보면 된다. 연예사업 종사자들은 정치와는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기들만 잘 먹고 잘살면서 서민을 도외시하는 군부 정권을 미워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대중의 사랑을 먹고사는 연예인들은 국민의 마음을 대변해야 한다.” 그의 들뜬 목소리에서 이번 선거에 대한 이 나라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느껴졌다.

주간지 기자라는 테잉 무이 씨도 “이번 선거를 계기로 언론 자유가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며 “이미 그런 변화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선거 전에는 모든 기사를 군의 엄격한 검열을 거쳐 출고했는데 선거(8일)가 끝난 지 불과 4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검열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거였다.

양곤에 와서 사람들을 만나 보니 반세기 가까운 고립과 억압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를 해보겠다는 열정이 강하게 느껴졌다. 길거리에서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하나같이 수지 여사와 NLD 지지자들이었다. 교육사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퓨퓨 아웅 씨에게 “어떻게 이렇게 한마음일 수 있느냐”고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남녀노소, 세대가 따로 없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도입되면 무한경쟁 시대가 되고 양극화도 심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경쟁이라는 기회조차 가져 보지 못했다. 군부가 부와 권력을 세습해 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노력하는 사람들이 인정받고 균등하게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회다.”

“수지 여사가 현실정치 경험이 부족해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라고 묻자 “미얀마 지식인들도 그런 걱정을 한다. 하지만 대안이 없지 않은가. 여사의 외유내강 이미지도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동정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미얀마연방공화국의 역사는 군부의 역사다. 군부는 반세기 가까이 이 나라를 지배해 온 최대 권력집단이다. 수지 여사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비례해 이 나라 사람들의 반군(反軍) 정서는 생각보다 컸다. 양곤에서 만난 한 대학교수는 “군부는 국방 내무(경찰 포함) 외교장관 지명권이 있으며 국방부에 대해서는 아예 감사도 할 수 없다. 국방비는 미얀마에서 가장 큰 정부 지출 항목 중 하나인데도 말이다. 육해공군 병력은 40만 명에 이른다. 국회의원도 무조건 25%는 군부가 차지한다”고 했다. 그는 “미얀마 군부는 거대한 기업이기도 하다. 산하에 MEC, UMEHL이라는 두 개의 지주회사를 둬 자원 개발, 농수산, 건설, 무역 등 경제의 60%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지 교육 관계자는 “대학 입학이나 취업에서 군부 자제들에 대한 특혜도 상당하다. 친정부 성향의 기업에서는 이들에 대한 뒷문 취업이 성행해 왔다. 심지어 군 자녀들은 대학 입학도 특혜를 받는다”고 했다. 그에게 “이렇다 할 시민혁명이 없었던 게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1990년 (NLD가 압승했던) 선거혁명에 군부가 불복하는 바람에 한 번 꺾였다는 트라우마가 컸다. 국민 90%가 불교를 믿는 불교국가라는 점도 국민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미얀마 사람들은 그때그때 반응하기보다 속으로 꾹꾹 참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 매우 컸다. 수지 여사를 향한 열광도 그런 민심이 반영된 것이다.”

미얀마는 1인당 국민소득이 1200달러에 불과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풍부한 천연자원에 비옥한 토지, 젊고 낮은 임금의 노동력, 지정학적 위치 등을 고려할 때 7%대의 고성장을 할 수 있는 요건이 충분한 나라”라고 했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이번 선거 결과를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것도 만약 이번에 평화적 정권교체가 되지 않는다면 미얀마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얀마는 ‘한국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희망 반, 걱정 반이었다.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한 한국인의 말이다.

“이번 선거혁명으로 대단한 발걸음을 뗀 미얀마인들을 보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기운이 싹터서 반갑다. 하지만 걱정도 앞선다. 나라를 재건하려면 유능한 인재들이 필요한데 그동안 육성이 안 되다 보니 인재가 없는 게 가장 큰 아쉬움이다. 파괴는 쉬워도 건설은 어려운 것 아닌가.”

김정안 기자 jkim@donga.com
#미얀마#민주주의#민주주의민족동맹#nld#아웅산 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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