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앙드레 글뤽스만, 우리 시대의 카산드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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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68혁명 세대를 대표하는 앙드레 글뤽스만만큼 지적 용기를 가진 철학자도 드물다. 그는 미국이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기 위해 벌인 1991년과 2003년의 이라크전쟁을 지지했고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세르비아 사태 개입에도 찬성했다. 그는 친미주의자나 친나토주의자로 오해받을까 봐 해야 할 말을 못 하는 지성인은 아니었다. 독재에 희생당하는 이들의 인권을 위해서라면 그런 정도의 오해는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돼 있었다.

▷글뤽스만은 1956년 프랑스공산당(PCF)의 당원이었으나 소련의 헝가리 부다페스트 침공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이후 좌파그룹 ‘악시옹’에 들어가 마오주의자로 68혁명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러나 그는 1974년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를 읽고 지적 전환을 감행한다. 베르나르 앙리 레비와 함께 반(反)전체주의적 철학인 신(新)철학의 양대 기수가 돼 스탈린 공산주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이라고 비판했다. 그에게는 좌파 지식인 사이에 만연한, 자기 패거리에서 낙인찍히는 데 대한 두려움 따위는 애초 없었다.

▷글뤽스만은 반스탈린주의를 거쳐 반공산주의자가 됐지만 우파로 돌아섰다기보다는 좌우를 넘어섰다. 그는 1979년 좌파의 사르트르, 우파의 레몽 아롱이 만나는 엘리제궁 모임을 주선해 함께 베트남 보트피플을 위한 대의(大義)에 참여하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알카에다의 9·11테러를 새로운 니힐리즘으로 규정하고 “세상에 신이 없다면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도스토옙스키적 질문을 던졌다. 이후 그는 이슬람에 대해 할 말을 하는 몇 안 되는 서구 지식인이 됐다.

▷글뤽스만은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에 진솔한 응답을 한 철학자였다. 그는 지성인을 “도성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카산드라”라고 정의했다. 그리스 신화의 여신 카산드라는 비록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더라도 할 말을 하는 예언자였다. 우리 시대의 카산드라가 10일 세상을 떠났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앙드레글뤽스만#카산드라#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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