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식물국회에 불법국회까지…‘국회 심판론’ 두렵지 않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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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지도부가 어제까지 사흘간 선거구 조정의 기준이 되는 지역구-비례대표 의석수 배분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렬됐다. 이 과정에서 여당이 주장한 국회선진화법 개정과 야당 선거구안 수용의 빅딜까지 거론됐다. 그러나 결국 밥그릇 싸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식물국회’에 더해 선거구 조정의 법정시한(13일)을 지키지 못하게 돼 ‘불법국회’란 오명까지 안게 된 셈이다. 국회는 사흘 남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활동 시한을 12월 15일까지 한 달 연장했다. 일각에서는 혹시 여야가 협상을 질질 끌다가 슬그머니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려는 속셈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국회가 제 할 일만 잘한다면야 국회의원 수를 늘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작금의 꼬락서니를 보면 ‘국회 해체’라도 부르짖고 싶을 지경이다.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10일 국무회의 발언에 이런저런 논란이 일고 진박(眞朴·진실한 친박), 가박(假朴·가짜 친박) 같은 희한한 신조어까지 나온다. 하지만 그 속에는 ‘민생을 외면하는 국회를 심판해 달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리얼미터가 11일 내년 총선의 성격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야당이 통상적으로 내세우는 ‘정권심판론’(39.9%)과 박 대통령의 ‘국회심판론’(39.7%)에 대한 지지세가 팽팽했다. 박 대통령의 호소에 공감하는 국민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국회는 8월 11일 본회의 이후 사실상 무위도식하다 93일 만인 어제야 법안 37건 등 41건의 의안을 겨우 처리했다. 그러나 노동개혁을 위한 5개 입법안,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긴요한 법안들, 수출의 숨통을 틔워줄 중국 뉴질랜드 베트남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같은 핵심은 이번에도 빠졌다.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논의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국회는 다수결 원칙을 무력화시킨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의 시행으로 야당의 승낙 없이는 본회의 개최도, 법안 처리도 아예 불가능한 구조다. 19대 국회의 법안 가결률이 12.5%로 역대 최하위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쟁점 법안뿐 아니라 여야 간에 이견이 없는 숱한 민생 관련 법안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 같은 정쟁(政爭)의 희생양이 되기 일쑤다.

이런 국회, 서로 남탓만 하는 이런 여야를 위해 어느 국민이 국회의원 수를 늘려주고 싶겠는가. 현역의원들은 지역구 지키기에 골몰할 때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국회 행태가 지속된다면 내년 총선에선 현역 의원들을 갈아 치우라는 ‘국회심판론’ 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수도 있다.
#식물국회#불법국회#심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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