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꿈, 다시 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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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만에 민항기 시험비행 성공… 생중계 동영상 300만명 시청
ANA 등서 407대 선주문 받아… 브라질-加와 중형기 시장 경쟁

53년 만의 이륙 11일 오전 일본 나고야 공항에서 미쓰비시항공기의 신형 제트기 MRJ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에 서자 관람객들이 일어나 사진을 찍고 있다. 일본산 민간여객기가 시험비행을 한 것은 53년 만이다. 아사히신문 제공
53년 만의 이륙 11일 오전 일본 나고야 공항에서 미쓰비시항공기의 신형 제트기 MRJ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에 서자 관람객들이 일어나 사진을 찍고 있다. 일본산 민간여객기가 시험비행을 한 것은 53년 만이다. 아사히신문 제공
11일 오전 9시 20분. 일본 중부 아이치(愛知) 현의 나고야(名古屋) 공항.

미쓰비시항공기에서 제작한 길이 35.8m의 소형 제트기 MRJ(Mitsubishi Regional Jet)의 바퀴가 천천히 구르자 활주로 근처에 모여 있던 관람객 500여 명이 탄성을 질렀다. 비행기는 천천히 방향을 바꾼 뒤 속도를 냈고 15분 뒤 굉음을 울리며 날아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이 묶여 있던 일본 항공 산업이 세계 시장으로 비약하는 순간이었다. 이 항공기의 이륙으로 일본은 바로 214억 달러(약 25조 원)에 달하는 세계 중형 항공기 제조 시장에 진입했다. 미국의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가 양분하고 있는 1512억 달러(약 175조 원)의 대형 항공기 시장도 넘보게 됐다.

이날 일본 석간신문들은 일제히 MRJ 시험비행 소식을 1면에 실었다. 미쓰비시항공기는 전용 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시험시행 상황을 중계한 뒤 동영상 사이트에 영상을 올렸는데 3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고 한다.

민간여객기 개발은 일본의 오랜 꿈이었다. 일본은 2차대전 당시 제로센 등 군용기를 연간 2만5000여 대씩 생산했지만 패전 후 일본을 통치한 연합군최고사령부(GHQ)는 항공기 관련 사업을 전면 금지시켰다. 이후 일본은 민항기 쪽으로 방향을 돌려 1962년 민항기 YS11을 개발했다. 하지만 여객기 수요를 확보하지 못해 ‘일본 하늘에 국산 비행기를’이라는 구호가 무색하게 1973년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일본은 미국과 공동으로 군용기를 개발하고 부품 산업을 발전시키며 기회를 엿봤다. 어느 정도 노하우가 축적됐다고 판단되자 다시 민간여객기 사업자를 공모했고 미쓰비시중공업이 여기에 응해 2008년부터 개발에 나섰다. 정부도 수천억 원을 지원했고 도요타자동차도 출자하는 등 민관의 자원이 총동원됐다.

도전은 쉽지 않았다. 시험비행은 2011년부터 설계변경 등을 이유로 5차례나 미뤄졌고 개발비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사히신문은 “현재까지 3000억 엔(약 2조8000억 원)에 가까운 개발비가 투입됐다”고 전했다.

패전의 그림자를 지우고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된 MRJ는 70인승과 90인승 두 종류이며 최대 운항거리가 3400km다. 대당 가격은 90인승의 경우 4730만 달러(약 550억 원)인데 이미 전일본공수(ANA) 등으로부터 407대를 수주한 상태다. 현재 시가만으로도 22조3850억 원어치를 주문받은 셈이다.

MRJ가 진입하는 중형기 시장은 브라질 엠브라에르와 캐나다의 봄바디어가 양분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등도 진입을 시도 중이다. 미쓰비시는 “소음을 경쟁사보다 40%가량 줄였고 연료비도 20% 이상 줄였다”며 향후 20년 동안 5000대가량으로 예상되는 중형 항공기 시장의 절반을 장악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에 따르면 전체 민항기 시장은 2012년 기준으로 1815억 달러(약 210조 원)에 달하며 2021년에는 2804억 달러(약 320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언론은 ‘꿈을 실은 부활의 날개’(요미우리신문), ‘꿈의 날개 창공을 날다’(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의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나고야 공항 주변 주차장 등에는 휴가를 내고 찾은 직장인 등 1000여 명이 모여 카메라와 망원경을 들고 비행을 지켜봤다. 마이니치신문은 “MRJ는 일본 기업들이 항공기 산업에서 하청 입장을 벗어나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도전”이라고 보도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일본#민항기#중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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