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의 시장과 자유]정주영의 포니, 정몽구의 제네시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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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올해 11월은 현대자동차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 달이다. 현대차는 4일 고급차인 ‘제네시스’를 ‘현대’와 별도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독립시킨다고 발표한 데 이어 어제 첫 모델인 럭셔리 세단 ‘제네시스 EQ900’ 설명회를 열었다. 25일에는 현대차를 비롯한 옛 현대그룹의 정주영 창업자가 태어난 지 100주년을 맞는다. ‘정주영 탄생 100년’이 어제의 성취를 상징한다면 제네시스는 내일의 성패(成敗)와 직결된다.

개도국 첫 독자 車모델 포니

한국의 5대 글로벌 주력산업인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중에서 자동차와 조선은 정주영을 빼면 생각하기 어렵다. 해외건설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첫 기업인도 정주영이었다. 나는 그의 일생에서 기업을 정치판에 동원한 1992년의 대선 출마와 그룹을 공중분해 직전의 위기로 몰아넣은 2000년 전후의 대북(對北) ‘묻지 마 투자’에는 비판적이다. 그러나 그의 기업가 정신이 수십 년간 우리 경제를 키우고 한국인의 삶을 끌어올린 공로는 몇몇 과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본다.

정주영은 1967년 국내외의 회의적 시각에 굴하지 않고 자동차산업 진출을 선언했다. 미국 포드와 합작해 조립생산으로 내놓은 코티나가 실패하자 오히려 고유모델 개발이라는 강수(强手)를 뒀고 마침내 1976년 1월 개발도상국 최초의 독자 자동차 모델인 포니 생산에 성공했다. 우리 자동차산업에 새로운 장이 펼쳐진 순간이었다. 현대차가 미국 수출을 시작한 1986년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한국인이 달려오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로 포니의 약진을 소개했다.

정주영이 동생 정세영과 함께 현대차의 태동기를 이끌었다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정주영의 무모한 대북 사업으로 위기에 몰린 현대가(家)를 회생시킨 주역이다. 1999년 현대차 회장에 취임한 뒤 어눌한 말투와 독특한 인사 스타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지만 철저한 품질 경영과 역발상 경영으로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5위 자동차그룹으로 끌어올렸다. 지난달 현대차는 미국 유럽 일본을 제외한 자동차회사로는 처음으로 미국 누적 판매량 1000만 대를 돌파했다.

최근 세계 자동차시장은 대중차보다 고급차 중심으로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작년까지 5년간 고급차의 연평균 판매 증가율은 10.5%로 대중차 증가율 6.0%를 훨씬 웃돈다. 지난해 일본 도요타의 판매는 2.8% 늘었지만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는 9.0% 증가했다. 양적으로는 비약적 성장을 했지만 ‘품질이 괜찮은 저가차(低價車)’ 이미지가 여전히 강한 현대차의 방향 전환은 불가피하다.

정몽구 회장은 올해 77세다. 연령을 감안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명차(名車) 브랜드를 육성해 세계 경쟁업체들과 정면 대결하겠다는 결단은 경영일선에서 마지막으로 던지는 중요한 승부수라는 생각이 든다. 시작은 그가 했지만 마무리를 해야 할 책무는 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네시스, 렉서스 따라잡을까

현대차가 독립 브랜드 출범으로 고급차 시장 공략에 성공할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임직원들이 합심해 또 한번의 ‘자동차 기적’을 일궈낸다면 한 기업의 약진을 넘어 선진국과 중국 등 신흥경제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경제에도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다. 나는 이런 상상도 해본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베스트셀러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처럼 제네시스라는 단어가 들어간 대박 출판물이나 영화가 세계인들을 사로잡는 날이 온다면 한국인으로서 얼마나 가슴 뿌듯할까.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정주영#포니#정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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