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폭언에 놀라 2배 택시요금 줬더니 딴곳서 받은 영수증 숫자고쳐 건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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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상대 바가지 요금 백태

#1. 9월 20일 새벽 일본인 여성 A 씨는 딸과 함께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택시를 탔다. 한국 관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서울 중구 명동의 호텔 앞을 출발한 택시는 30분도 안 돼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운전사는 대뜸 “요금 8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A 씨의 딸이 “보통 3만 원 정도가 아니냐”라고 묻자 그는 “공항까지는 두 배”라며 언성을 높였다. 뒤늦게 A 씨가 살펴보니 택시미터기는 아예 켜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른 시간 택시 안에서 택시운전사의 강압적인 태도에 겁먹은 A 씨 모녀는 결국 8만 원을 지불했다. 그 대신 나중에 신고라도 하려고 영수증을 요구했다. 그는 미터기 안쪽을 뒤적이다 종이 한 장을 찾아내더니 무언가 적어 건넸다.

택시가 떠난 뒤 A 씨 모녀는 영수증을 살펴봤다. 택시운전사가 건넨 종이는 요금 영수증이 아니라 액화석유가스(LPG)를 충전하고 받은 3만 원짜리 영수증이었다. 택시운전사는 맨 앞에 ‘3’이라는 숫자를 사인펜으로 ‘8’로 고친 뒤 A 씨에게 건넨 것이었다.

#2. 지난달 31일 새벽 출국을 위해 서울 동대문에서 인천공항까지 택시를 이용한 20대 중국인 여성 2명도 똑같은 피해를 봤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운전사는 요금 10만 원에다 웃돈 4만 원까지 요구했다. 같은 거리 요금은 보통 5만∼6만 원이다. 위압적인 운전사의 횡포에 위협을 느낀 여성들은 비행기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어쩔 수 없이 남은 한국 돈 10만 원을 주고 모자란 금액은 위안화로 냈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일부 택시의 횡포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10일 서울시에 따르면 8월 말부터 지난달까지 집중 단속을 벌인 결과 120여 건의 부당요금 청구 사례가 적발됐다. 서울시는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가 가능한 공무원 6명으로 구성된 단속 전담팀을 운영 중이다.

택시의 부당요금 청구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시간대는 이른 새벽, 출발지는 명동이나 강남이 많다. 또 남성보다 여성 관광객의 피해가 대부분이다. 서울시는 “적발건수의 90% 이상이 여성 승객으로, 택시운전사의 폭언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거나 비행기 시간이 촉박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요금을 주고 가는 사례가 많았다”고 전했다.

미터기를 끄고 도심에서 공항까지 운행한 뒤 웃돈을 요구하거나, 20%의 시외(市外)할증을 적용해 1만∼2만 원을 더 챙기는 것은 보편적인 수법이다. 한 택시운전사는 3만 원, 5만 원, 8만 원, 10만 원, 15만 원, 20만 원 등 금액별로 6종류의 가짜 영수증을 미리 끊어 놓고 일본에서 온 여성 관광객만을 상대로 가짜 영수증을 내밀다 적발되기도 했다.

부당요금을 청구하다 적발되면 1차는 과태료 20만 원에 경고가, 2차는 과태료 40만 원과 자격정지 10일이, 3차는 과태료 60만 원과 자격정지 20일이 각각 부과된다. 신고는 한국관광공사 관광불편신고센터(1330)나 서울시 다산콜(120)로 하면 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피해를 본 관광객에게는 과다 청구된 차액을 송금해주고 처리 결과도 통보한다”며 “택시운전사가 폭언이나 위협을 해 과다요금을 챙겼을 경우 공갈 및 협박죄를 적용해 고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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