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해운업계 빅딜, 외환위기 때처럼 정부 주도로 할 참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0일 00시 00분


코멘트
어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또는 매각을 구조조정 차관회의에서 추진한다는 소문에 두 기업의 주가가 동반 급락했다. 구조조정 컨트롤타워인 금융위원회와 해당 부처인 해양수산부는 강제합병을 추진한 사실이 없다고 공식 부인했지만 한진해운 측은 “정부의 합병 검토 요청을 받았고, 어렵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은 정부에서 어떤 요청도 받은 바 없다고는 했으나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팔을 걷어붙이면서 시작부터 잡음이 불거졌다.

글로벌 경제의 장기 불황으로 국내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절박한 것은 사실이다. 세계 해운업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황에 빠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최근 10개 분기 누적적자가 각각 3200억 원과 6700억 원이 넘는다. 한국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대기업들의 ‘실적 쇼크’가 이어지고 올해 신용등급이 내려간 기업도 45개사로 1997년 외환위기(61개사) 이후 가장 많았다. 최근 5중 전회에서 6%대 성장률을 공식화한 중국이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구조조정을 가속화하면 한국 기업들의 충격은 더 심각해질 게 뻔하다.

경쟁력 있는 대기업은 자발적 인수합병(M&A)과 사업 재편으로 글로벌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삼성은 작년 말에 이어 지난달 말 롯데그룹에 삼성정밀화학 등 화학계열사를 3조 원대에 매각하는 두 번째 빅딜을 성사시켰다. 문제는 좀비기업이다. 부실기업들은 채권단의 지원에 의존해 연명하고, 채권은행들도 당장의 손실처리가 두려워 과감한 구조조정을 미루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도 2013년 말 자산 매각, 유상증자 등으로 각각 1조 원이 넘는 자금조달 자구책을 내놨으나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정부가 전체 구조조정 상황을 점검하고 지원해야지 직접 개별 기업의 빅딜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정부 주도의 빅딜이 과잉설비 축소와 기업경쟁력 강화의 성과를 냈다고는 하나 부작용도 컸다. 국내외 여건상 이제는 정부 강제에 의한 빅딜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부는 민간 기업의 구조조정은 시장에 맡기되, M&A를 촉진하는 기업활력제고법(일명 원샷법) 등 각종 법과 제도를 정비해 자율적으로 추진할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소속된 대우조선해양 살리기에 섣불리 개입해 노조에서 ‘격려금 파티’를 벌이는 등 도덕적 해이까지 몰고 온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우선 116개 산은 자회사부터 구조조정함으로써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한진해운#현대상선#합병#매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