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팩트] 사골로 만든 ‘설렁탕’, 고기를 고은 ‘곰탕’ … 일부선 둘은 같은 음식 주장

  • 입력 2015년 11월 9일 1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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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알려진 선농단說 사실 아니야 … 음식 속 소면은 1970년대 혼분식장려운동 탓

가난했던 시절 설렁탕과 곰탕은 고깃국물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던 음식이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으로 각종 문학작품이나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저렴한 음식은 아니더라도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음식 중 하나였다.

설렁탕과 곰탕은 구별하기 쉽다. 설렁탕은 사골 등 뼈로 국물을 내며, 곰탕은 고기를 이용한다. 설렁탕에도 고기가 들어가긴 하지만 수십년 전까지는 정육 후 남은 허드레 고기가 대부분이었다. 설렁탕 국물은 뿌연 유백색이다. 곰탕 국물은 노란 기름이 둥둥 떠있으며 약간 투명하다.

최근까지도 둘다 명확하게 구분지어 먹지 않았다. 둘다 소를 이용한 국물 음식이었기에 굳이 따질 필요가 없었다. 일부에서는 둘은 본래 같은 음식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950년대 6.25전쟁 여파로 소의 사육 두수가 급감하면서 소가 귀해졌다. 소 값이 오르니 둘다 귀한 음식이 됐다. 푹 고아 만들었다는 의미와 ‘고음(膏飮)’이라는 보양적 이미지가 중첩된 ‘곰탕’이 설렁탕과 곰탕을 총칭하는 이름으로 자주 쓰였다.

1948년 교육자 손정규가 지은 ‘조선요리‘라는 책에는 곰탕과 설렁탕 제조법에 대해 설명돼 있다. 그는 곰국에 대해 “사태, 쇠꼬리, 허파, 양, 곱창 등을 덩이째로 삶아 반쯤 익었을 때 무·파와 간장을 조금 넣어 다시 삶는다”며 “무르도록 익으면 고기나 무를 꺼내어 잘게 썰어 즙을 내고 후추와 파를 넣는다”고 밝혔다. 설렁탕은 “우육(牛肉)뼈와 뼈에 붙어있는 잡육, 내장 등을 물에 넣고 하루쯤 곤다”고 설명했다.

설렁탕은 흔히 조선시대 왕들이 선농단(先農壇)에서 제사를 지내고 남은 고기를 이용해 백성들에게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설렁탕이 등장한다는 설도 사실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최남선은 설렁탕의 유래에 대해 몽골에서 맹물에 소를 삶아 먹는 음식을 술루라고 불렀고, 이것이 고려로 넘어오면서 설렁탕의 어원이 된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이도 검증된 것이 아니다. 최남선이 주장한 술루탕은 설렁탕과 이름만 약간 유사할 뿐 실제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설렁탕의 정확한 기원은 알기 어렵지만 일제강점기 선총독부의 영향으로 설렁탕이 대중화된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일본은 전쟁물자 보급을 위해 한반도에 육우를 대량으로 사육했다. 덕분에 서울 시내엔 정육점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이 곳에서 사용하다 남은 뼈를 비롯한 각종 부산물을 이용한 음식도 개발되기 시작했다.

초기 설렁탕은 서민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기름기가 가득한 탁한 빛깔에다가 천민으로 취급하던 옹기장이가 만든 싸구려 뚝배기에 담겨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도의 조리시간 없이 솥에서 담아내면 간단히 만들어지는 설렁탕은 1분 1초가 아까웠던 서민들에게 금세 인기를 끌었다.

곰탕의 어원과 유래에는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이 중 가장 설득력있는 것은 고려시대 몽골인이 맹물에 고기를 넣고 끓여 먹는 ‘공탕’이 전해져 ‘곰탕’으로 변했다는 설이다. 몽골인이나 고구려인 등 기마민족들은 육식을 즐겨했다. 살코기를 먼저 구워 먹고 남은 부위는 탕으로 끓여 먹었다.

조선시대 말기에 편찬된 조리서인 ‘시의전서’에는 곰탕에 대해 ‘소의 다리뼈, 사태, 도가니, 꼬리 등을 큰 솥에 넣어 물을 많이 붓고 약한 불로 오래 푹 고아야 맛이 진하고 국물이 뽀얗다’고 적었다. 책에서는 이 음식을 ‘고음’이라고 기록했다. 일부에선 고기를 ‘곤다’에서 ‘고음’이 되고 이게 ‘곰탕‘이 됐다는 설을 주장한다.

1809년 순조 9년에 지어진 ‘규합총서’에는 ‘살찐 쇠꼬리를 무르게 삶아 잘게 찢어 기름장, 후추, 깨소금에 주물러 끓이는 쇠꼬리곰을 만들어 먹었다’는 ‘쇠꼬리곰탕’에 관한 기록이 있다.

요즘 곰탕으로 가장 유명한 게 나주곰탕이다. 전남 나주읍성 안에서 5일장을 찾던 장사꾼에게 소 머릿고기, 내장 등을 고아 팔던 소고기국밥에서 유래됐다. 예부터 나주는 우시장이 발달해 소 부산물을 이용한 음식들이 발달해 왔다. 지금은 한우의 양지, 사태, 등심, 갈비살 등으로 국물을 낸다. 소뼈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기름기를 제거해 담백하며 다른 곰탕보다 고기 양이 많다. 고기도 질기지 않고 부드럽다.
불고기로 유명한 울산 언양에는 예부터 소 도축장이 많았으며 이 곳 곰탕도 살코기, 우설, 내장 등을 듬뿍 담아 곤다. 국물이 노르스름하면서 끈적할 정도로 진하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의 소머리국밥은 소머리에서 뼈를 발라내고 고기만 넣은 것이다. 먼저 사골을 우려낸 물에 소머리에 붙은 주둥이, 혀, 귀 등을 넣고 3시간 끓인다. 냄새 제거를 위해 무와 인삼을 넣기도 하고 찹쌀가루를 첨가해 국물 농도를 조절한다. 밥과 소머리 썬 고기를 담아놨다가 먹기 직전에 뜨거운 국물로 몇번 데우는 ‘토렴’을 반복해 먹는다. 설렁탕을 기초로 곰탕적인 요소를 가미한 국밥으로 볼 수 있다.

대구 따로국밥은 소뼈를 곤 국물에 파, 무, 고추 등으로 양념해서 끓인다. 여기에 선지를 넣고 다시 끊인다. 국물이 얼큰하고 시원하다. 국물과 밥을 따로 내놓는 게 특징이다. 얼큰한 설렁탕에 가깝다.

설렁탕은 서울에서만 먹는 지역음식의 인상이 강했다. 식당에서는 일반적으로 시간과 인력을 아끼기 위해 설렁탕에 소 한 마리 분량의 뼈와 잡고기를 넣는다. 대량의 재료를 넣다보니 하루에 소비해야 될 양도 늘어났다. 많은 식재료와 짧은 시간에 음식을 소비해줄 손님은 서울이 아니면 전국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따라서 설렁탕이 서울에서만 먹었던 음식은 아니지만 서울에서 주로 먹었던 음식이었다.

설렁탕과 곰탕에는 밀가루로 만든 소면이 들어간다. 1970년대 만성적인 쌀부족 현상을 겪자 정부에서 혼분식 장려운동의 하나로 밀가루 음식인 소면을 넣기 시작했다. 설렁탕과 곰탕에 뿌리는 파는 고기 특유의 누린내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취재 = 현정석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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