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 과잉시대에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9일 16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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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설명은 무척 흥미로워. 사람들이 기아의 실태를 아는 것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긴다는 거야. 그래서 그 지식 위에 침묵의 외투를 걸친다는 거지. 오늘날 학교와 정부와 대다수의 시민들도 이런 수치심을 가지고 있단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갈라파고스·2007년)

고교 시절 초등학생을 위한 36쪽짜리 그림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란 제목이 달린 책은 환경운동가인 도넬라 메도우스의 칼럼을 재구성한 것이었다. 당시 63억 명 이상이 살고 있는 지구를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딱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했을 뿐인데 그 내용이 놀라웠다.

100명 중 20명은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1명은 굶어죽기 직전이다. 또 43명은 위생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고, 18명은 깨끗한 물조차 마실 수 없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환경에 처해 있었고 부와 자원, 교육은 소수에게 집중돼 있었다. 그 책을 읽다보니 “그래도 나는 100명 중에 많이 가진 쪽에 속하는 구나.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대적으로 행복한 편이라는 걸 알고부터 매스컴을 통해 기아 문제가 나올 때마다 나는 애써 외면했던 것 같다. 불행을 타고난 사람들을 보는 것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기아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활동가인 장 지글러는 이런 불편한 진실을 도마 위에 올린다.

배고픔은 우리 이웃들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할 고통이 아니다. 1984년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당시 농업 생산력을 기준으로 120억 명을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하고 있었다. 오늘날 세계 인구는 72억8456억 명으로 늘었지만 농업 생산력은 훨씬 더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1명씩 굶어 죽는다고 한다.

유엔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던 지글러는 전 세계적 식량 과잉의 시대에 비극적인 기아가 나타나는 까닭을 자녀에게 설명해주듯 글을 썼다. 지글러는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라고 했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박민우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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