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는 인연 없는 노벨상…“수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9일 14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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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노벨상은 금년에도 다른 나라의 일처럼 흘러갔다. 매년 10월만 되면 과학자나 연구자, 문인, 인권지도자 등 각 분야별로 어떤 사람이 노벨상을 받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기술과 과학 수준이 급속히 올라간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이웃 나라 일본은 올해도 2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생리의학상 3명, 물리학상 11명, 화학상 7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 등 2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과학 분야 수상자가 21명이나 된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노벨상에 아무리 목말라 해도 모래밭에 성을 쌓을 수는 없다. 학문과 연구에는 지름길이 없다. 학문과 연구의 목적은 노벨상을 타는 것에 있지 않다. 노벨상은 연구의 결과일 뿐이며, 연구는 요령 없이 인내심으로 하는 것이다. 연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뚝심으로 밀고 나가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런 환경을 마련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현장을 바로 세우는 것이며, 연구자들이 자유로이 연구할 수 있도록 정부가 과감하게 지원하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 초청연사로 온 일본의 히라노 히사시 교수를 만났다. 그는 내가 일본 요코하마시립대학교 기하라생물연구소에서 몇 년 있을 때 만난 학자다. 히라노 교수는 질량분석기를 이용해 단백질 기능을 밝히는 단백질체학 (proteomics)의 권위자다. 때가 때인 만큼 그와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노벨과학상으로 흘러갔다.

히라노 교수는 노벨상은 나라가 주는 것이지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벨상의 조건으로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을 꼽았다. 얘기 도중 세계적인 과학 잡지 네이처에 게재되었다는 새로운 논문과 그 논문의 핵심 연구자인 차기 노벨생리의학상 강력 후보자가 화제로 떠올랐다. 주인공은 세포 내 단백질 등을 분해해 재활용하는 ‘오토파지(autophagy, 自食作用)’라고 불리는 현상을 규명한 도쿄공업대학 특임 교수인 요시노리 오스미 박사다. 요시노리 교수도 30년간 오로지 오토파지 분야만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이는 연구자나 정부가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 우리의 실정은 어떤가. 우리의 초중고 교육은 대학 진학이 주목적이고, 대학은 상업적으로 흘러가고 있다. 교육부는 교육본질은 외면한 채 구조개혁이니 취업률 향상이니 하며 엉뚱한 사업만 벌려놓고 그것을 평가의 잣대로 들이디며 대학을 위협하고 있다. 어떤 인재를 키울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 없는 한 노벨상은 우리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연구와 학문에 전념해야하는 대학이 요즘은 취직이 잘 되는 학과는 살리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통폐합하며 편중 지원만 하고 있다.

1967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독일 막스플랑크 생물리화학연구소의 만프레드 아이겐 박사는 고별강연에서 수만 번의 실험 실패가 한 번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어떤 것이든 값진 열매는 쉽게 익지 않는다. 성공이 어렵다고 하는 과제를 실패를 거듭하며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과정이 실험이고 연구다. 실험실에서 실패를 거듭한 것이 엉뚱하게 노벨상을 받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제 노벨상 이야기는 그만하고 우리의 교육과 연구체계를 바로 잡는 일에 몰두해야 한다. 제대로 교육받은 인재들이 기초과학이든 응용과학이든 평생 한 분야에서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이것이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면 지름길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 어느 분야든 열심히 하는 자가 우대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 노벨상을 받을 만한 인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연구자들이 방해를 받지 않고 연구 외길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없는 것이다.

우선희 충북대 식물자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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