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영수]국회선진화법, 국회가 결자해지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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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국회선진화법이란 2012년 개정된 국회법을 말한다. 그 내용으로 의장의 직권상정 제한, 의장석 점거 금지, 안건의 신속 처리, 본회의에서의 무제한 토론 도입 등이 있으나 현재 쟁점이 되는 것은 법안 처리와 관련해 과반수가 아닌 재적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요구하는 제85조의2 제1항, 제86조 제3항 등이다.

당시 국회법 개정의 배경은 다수당의 날치기식 법안 통과와 이에 맞서는 소수당의 실력 저지라는 물리적 충돌의 반복을 막으려는 것이었고 그래서 국회선진화법은 ‘몸싸움 방지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시행 후 3년이 지난 현재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평가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분명 국회 폭력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국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식물국회가 되었다는 비판이 높아지는 가운데 헌법재판소에 국회선진화법 권한쟁의심판까지 제기된 지 오래다.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으로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이 채택되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의 이념과 의사결정의 효율성 사이의 타협이다. 만장일치를 지향한다면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키는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최선의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의사결정 자체가 불가능해질 우려도 크다. 그래서 다수결 원리를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삼아 결정 참여자들의 자유와 평등을 최대한 확보함과 동시에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물론 재적 과반수 출석에 출석 과반수 찬성이라는 단순 다수결 이외에 특별한 안건에 대해서는 가중다수결이 채택되기도 한다. 헌법의 개정이나 대통령의 탄핵 등 사안의 중대성으로 인해 심사숙고가 요청되는 때에는 재적 3분의 2가 요구되며 그 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가중다수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은 그러한 예외적 경우가 아닌 법안 처리의 일반적 방식을 재적 5분의 3이라는 가중다수결로 함으로써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국회선진화법은 내용상 위헌이며 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해 위헌으로 결정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이러한 국회선진화법 도입에 적극 찬성했던 새누리당이 총선에 승리한 이후에 태도를 바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는 것도 그 설득력에 의문을 갖게 만들고 있으며,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내부적 의사결정방식을 바꾼 것에 대해서까지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도 문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 위상을 지키면서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면 여야 모두가 다수당이 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내년 총선 이전에 국회 내의 정치적 합의를 통해 국회법을 개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여야 모두 자기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여당은 야당의 발목 잡기를 비난하기 전에 왜 스스로의 발목에 족쇄를 채웠는지를 반성해야 할 것이고, 야당은 선진화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결국 야당의 책임으로 귀속된다는 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총선에 나서기 전에 묵은 과제를 해결하자. 여야의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국민의 뜻에 따라 국회법을 개정하자. 그러지 않을 경우 마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여야의 특검에 대한 입장이 바뀌듯이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태도도 총선 이후에 또다시 바뀌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만일 정치권에서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에는 결국 헌법재판소가 어떤 식으로든 결정을 내놓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위헌 결정이건 합헌 결정이건 여야 모두를 승자가 아닌 패자로 만들게 될 뿐이며 국민의 국회에 대한 신뢰는 다시금 더욱 추락하게 될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국회#선진화법#국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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