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선 잡은 여수 임포소초, 생활관 신축 갈등 1년만에 봉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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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같은 병사 위해” 民軍의 양보… 軍 “시설 낡아 생활 열악” 신축 추진
주민들 “관광명소 경관 해쳐” 반대… 권익위-종교계-市 중재로 해결

전남 여수시 돌산읍 금오산의 거북이 형세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정상 부근에는 간첩선을 발견한 임포소초가 있다. 여수시 제공
전남 여수시 돌산읍 금오산의 거북이 형세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정상 부근에는 간첩선을 발견한 임포소초가 있다. 여수시 제공
남해안의 끝자락 전남 여수시 돌산읍 금오산(金鰲山)에는 육군 31사단 임포소초가 있다. ‘소초’는 초병 2명이 지키는 초소와 달리 요충지를 경계하는 부대다. 생긴 지 31년 된 임포소초는 간첩선은 물론 북한을 오가는 선박을 감시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 1998년 12월 17일 칠흑 같은 바다로 침투한 북한의 반잠수정을 발견해 해군 초계함이 이를 격침시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곳의 초병들은 1분1초도 한눈을 팔지 못하고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생활은 괴롭다. 지은 지 20년이 넘은 가건물은 냉난방이 되지 않고, 바닥이 썩어 쥐가 들락거린다. 사물함을 놓을 공간이 없어 바닥에 옷을 쌓아놓고 있고, 화장실은 한 개뿐이다. 식당도 비좁아 3교대로 식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육군은 이런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임포소초에 새 병영생활관(내무반)을 짓기로 했다. 20억 원이 투입되는 새 내무반은 1295m² 규모의 2층 건물이다. 신축 내무반은 햇빛이 잘 드는 양지를 골라, 낡은 기존 시설이 있는 곳에서 임포마을 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짓기로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지난해 12월 “금오산이 거북이 형세인데 머리에 해당하는 바닷가 야산에 자리한 임포소초에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며 반대했다. 마을 이장 김상도 씨(58)는 “일제가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을 막기 위해 임포소초 자리 야산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했다. 내무반 신축 자체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관광객들이 확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해안에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도 작용했다.

내무반 신축을 둘러싸고 마찰이 장기화되면서 공사 착공이 해를 넘길 상황이 되자 국민권익위원회와 종교계, 여수시가 중재에 나섰다. 중재안은 육군 31사단이 새 내무반을 기존의 낡은 소초 시설이 있는 곳에 짓되, 주민들은 시설 규모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 내무반은 임포소초 초병 40여 명 외에 인근 레이더기지 병사 30여 명이 생활하는 시설로 통합된다. 여수시는 내무반을 기존 부지에 짓고, 공사부지를 공원화하는 사업에 7억 원을 지원키로 했다. 임포마을 주민들이 5일 총회를 열고 중재안을 받아들이면서 내무반 신축 갈등이 1년 만에 매듭지어졌다.

중재를 돕던 향일암 진옥스님은 “임포소초를 둘러보고 손자뻘인 젊은 초병들이 열악한 시설에서 나라를 지킨다는 것에 미안했다”며 “민관군이 한발씩 양보해 서로 상처를 입지 않고 갈등을 봉합했다”고 말했다.

여수=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임포소초#군대#軍#생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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