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삶이 있기에 죽음도 있다’ 시한부 작가의 담담한 일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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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게 뭐라고/사노 요코 지음·이지수 옮김/200쪽·1만2000원·마음산책


죽음에 대해 감상을 얹어 얽은 말과 글에 공감하지 않는다. 남이라 할 수 없는 누군가의 죽음이 현실로 닥친 상황에서 감상이 끼어들 틈은 없다.

글쓴이는 1938년 중국에서 태어난 일본인이다. 도쿄의 미대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33세에 그림책 작가로 데뷔했다. 2004년 66세 때 유방암 수술을 받고 3년 뒤 의사로부터 “암이 재발해 뼈로 전이됐다. 앞으로 2년쯤 더 살 수 있을 거다. 병원비와 간병비로 1000만 엔(약 9300만 원) 정도가 들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초록색 재규어 자동차를 구매한다. 항암제를 거부하고 ‘곧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2010년 사망하기 전까지 삶을 마무리하는 건조한 기록을 남겼다. 이번 책은 석 달 전 국내 출간된 그 기록 묶음 ‘사는 게 뭐라고’에 이어 나머지 원고에 주치의와의 인터뷰를 추가한 것이다. 투병담은 아니다.

“통증이 시작되면 지체 없이 마약류 진통제를 놓아 주기 바란다. 죽는 건 아무렇지 않지만 아픈 건 싫고 무섭다. 멍해진 머리로 침을 흘려도 괜찮으니 아픈 것만은 피하고 싶다. 의사를 믿지 않으면서도 의사 앞에서는 굽실굽실 비굴해진다. 그치들은 환자와 눈높이를 맞출 줄 모른다.”

생판 모르는 타인의 죽음 이야기를 들춰 보는 건 아마 살아가는 이유의 작은 실마리라도 줍고 싶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 이유가 필요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허락된 시간을 어떻게든 채우는 일뿐이다. 작가의 말처럼 “이성과 언어는 (죽음이라는) 압도적 현실 앞에서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한 가지 궁금해졌다. 1000만 엔이면, 일본 요양원에서는 정말 통증이 시작되자마자 마약류 진통제를 놓아주는지. 원제는 ‘죽을 의욕 만만’이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죽는 게 뭐라고#시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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