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벌써부터 역사교과서 필진에 인신공격이라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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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국사편찬위원회의 국정 중고교 역사 교과서 집필진 관련 브리핑 자리에는 참석 예정이던 대표필자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가 나오지 못했다. 새벽부터 40여 명이 만류 전화를 하고 제자 2명이 집에까지 와서 막았기 때문이다.

스승을 걱정하는 충정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정화 반대 진영에서 역사학계 원로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압박하는 행태가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제자로서 당신이 정말 부끄럽습니다’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가 하면 인터넷에서는 ‘다 늙어서 무슨 부귀영화를 더 누리겠다고 곡학아세를…’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제자들’이라며 노욕(老慾)과 친일로 몰아붙인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집단 테러”라며 걱정할 정도다.

좌파 진영 일각에선 국정화 지지를 밝힌 학자들을 겨냥한 ‘신상털기’ 위협과 함께 ‘제1, 제2의 이완용이 돼 조국과 민족을 배신하려는 어용 교수들’ 같은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2013년 좌파 성향 단체들이 총공격에 나서 우파 시각의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원천봉쇄 했던 것과 빼닮았다.

이들의 집요한 공격은 명망 있는 학자들의 집필을 포기시켜 결과적으로 부실 교과서로 만들려는 술책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학계에서는 “국정화 교과서가 얼마나 가겠느냐. 집필에 참여하면 다시 검정으로 바뀔 때 ‘왕따’를 당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재야 사학자들은 1970년대 말 ‘상고사 논쟁’ 때나 1981년 ‘국사 교과서 파동’ 때 중진 학자들을 ‘식민주의 사학자’로 몰아붙여 국사 교과서 집필을 기피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양성 존중과 학문의 자유를 강조하던 좌파 진영이 학문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격모독을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좌파의 반(反)민주적 인신공격에는 진영 논리에 따른 이념대결을 넘어 교과서와 참고서 판매를 노리는 이권의 카르텔도 숨겨져 있다. 이들의 작태는 ‘좌편향 역사 교육 시정’이란 국정화의 타당성, 집필진 비공개에 대한 명분만 제공할 것이다.
#역사교과서#인신공격#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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