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노둣돌과 징검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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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팔아 예쁜 꽃신을 사주겠다.” 구상연 할아버지(98)는 헤어질 때 여섯 살, 세 살이던 두 딸에게 한 약속을 65년 만에 지켰다. 지난달 26일 이산가족 상봉에서다. 다른 사람들의 사연이라고 다를 게 없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아들에게 “누구냐”고 묻고, 스물한 살에 납북된 아들은 43년 만에 어머니의 품에서 오열했다.

이산가족들은 2박 3일간의 짧은 만남 뒤 또다시 기약 없는 생이별을 했다. ‘작별상봉’이란 말이 거짓이 아니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상실감과 북의 가족들을 도울 수 없다는 좌절감에 남쪽 상봉자들은 우울증까지 겪는다고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직녀에게’·문병란) 이산가족들의 심경을 제대로 표현했다.

노둣돌은 말을 타거나 내릴 때 디디려고 대문 앞에 놓은 큰 돌이다. 하마석(下馬石)이라고도 한다. 댓돌은 집채의 낙숫물이 떨어지는 곳 안쪽으로 죽 늘어놓은 돌이고, 섬돌은 집채 앞뒤의 돌층계를 가리킨다. 모퉁잇돌은 교회의 주춧돌이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기도 한다. 하나같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돌들이다.

새삼 돌의 세계가 흥미롭다. 같은 돌인데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돌을 길바닥에 놓으면 걸림돌 거침돌이 되고, 땅이 질척거리는 곳에 놓으면 모두를 건네주는 ‘징검돌’이 된다. 크기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르다. 큰 것이 돌덩이, 그보다 조금 작은 게 돌멩이, 제일 작은 게 자갈이다. 생김새에 따라서도 달리 부른다.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큼지막한 돌이고, 섭돌은 모나고 날카로운 돌이다.

무엇을 눌러 놓는 데 쓰는 돌은 지지름돌, 누름돌이라 한다. 화로의 불이 쉬 사위지 않도록 눌러놓는 조그만 돌이 불돌이고, 김칫독 안의 김치 포기를 눌러놓는 넓적한 돌은 김칫돌이다.

땅 위로 내민 돌멩이의 뾰족한 부분을 돌부리라 하는데 돌뿌리로 잘못 아는 사람이 있다. 어떤 물건의 끝이 뾰족한 부분을 ‘부리’라고 하니 돌부리가 옳다. 발끝은 ‘발부리’, 손가락 끝은 ‘손부리’, 총구멍이 있는 부분은 ‘총부리’다.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과 상봉 정례화를 위해 모두가 마음 모아 노둣돌과 징검돌을 놓아 보자. 이산가족의 슬픔은 ‘끝나야 한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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