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속 수상한 ‘검은 봉지’… 그속엔 음란전단과 일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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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성매매 전단 단속현장

경찰이 3일 압수한 성매매 전단지들.
경찰이 3일 압수한 성매매 전단지들.
오후 6시 30분. 운동복 차림의 한 남성이 주변을 살피다 1층 화장실로 들어갔다. 한쪽 어깨에 멘 묵직한 가방에서 형형색색의 전단을 꺼내더니 재빠르게 종류별로 배열해 소변기 위 벽에 붙였다. ‘쓰리노 클럽 9만 원, 여대생 쇼쇼쇼’ 등 적나라한 문구와 함께 여성 사진이 담겨 있었다. 숨죽이고 지켜보던 경찰이 뛰기 시작했다. 출입구는 하나. 갈 곳 잃은 남성은 연신 고개 숙이며 “한 번만 봐 주세요”라고 말했다.

경찰이 3일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지역의 무분별한 성매매 전단 살포를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은 이날 성범죄 전문 경찰관 13명으로 이뤄진 합동단속반을 이 지역에 투입해 성매매 알선 혐의로 성매매 업소 사장 김모 씨(37)와 전단 유포업자 정모 씨(52) 등 2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광고물 무단 부착 혐의로 5명을 과태료 처분했다고 4일 밝혔다.

단속은 쉽지 않았다. 전단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유포된다. 상권 내 유포업자 여럿이 나눠 오토바이를 타고 뿌리는 방식과 전단 유포 총책이 일반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화단 등에 전단과 일당이 담긴 비닐봉지를 놓아두면 유포업자들이 이를 가져다 유포하는 방법이다. 유포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된다. 지역마다 고정적으로 활동하는 유포업자들이 있어 얼굴이 알려진 경찰은 단속하기 힘들다.

단속반은 최대한 경찰 신분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현장을 덮치지 않으면 혐의 입증이 어려운 특성 때문이다. 청바지와 바람막이 점퍼를 입은 경찰들은 두 팀으로 나눠 일산동구청 일대에서 가장 번화한 ‘웨스턴 돔’ 상권과 ‘라페스타’ 상권을 돌며 이미 전단이 붙어 있는 건물을 제외하고 붙지 않은 건물 1층에서 잠복했다.

오후 8시. 또 한 번의 기회가 왔다. 두툼한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거리를 걷던 정모 씨(52)가 건물 안으로 슬며시 들어갔다. 뒤를 밟은 경찰의 눈에 주머니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전단이 보였다. 정 씨는 “딸 대학 등록금 때문에 전단을 붙이고 다녔다”며 “안 그래도 언론에 이 일대 성매매 실태가 보도돼 조심하려 했는데 굶어 죽을 수는 없어 일을 나왔다”고 하소연했다. 경찰은 전단을 압수하고 정 씨를 성매매 알선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오후 9시. 경찰은 성매매업소도 단속했다. ‘스포츠 마사지, 커플룸 완비’라고 적어 건전한 마사지 업소인 것처럼 위장한 성매매업소에는 9.9m²(약 3평) 남짓한 방 10여 개가 있었다. 방에는 마사지 오일, 가글액, 일회용 면도기, 로션 등이 구비돼 있었다. 손님으로 위장한 경찰에게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이 콘돔을 권하는 순간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여성은 “그냥 마사지만 하려고 했다”고 주장했지만 콘돔을 권한 이유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못했다.

단속이 끝난 오후 11시. 한 차례 이뤄진 단속으로는 성매매 전단 살포와 알선 행위를 근절하지 못했다. 경찰 단속이 이뤄진 업소 바로 옆 마사지 업소에서는 여전히 성매매를 권하는 업자가 손님을 유혹했다. 건물 곳곳에 붙어 있는 전단 속 연락처의 주인들은 “오피스텔에서 여성과 있다가 걸리면 연인이라고 하면 된다. 단속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현장 단속할 때 성매매 여성과 실제 성행위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구체적 물증을 잡기 어려워 성매매 단속은 매우 어렵다”며 “연말까지 매주 2, 3회씩 합동단속반을 이 지역에 집중 투입해 성매매 관련 불법행위를 근절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고양=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김철웅 채널A 기자
#성매매#일산#음란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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