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걸리겠지” 선수들 불감증 “괜찮겠지” 솜방망이 처벌, 커지는 술·도박·약물의 유혹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1월 5일 05시 45분


■ 프로야구 도덕성을 되찾자

3. 선수도 제도도 변해야 산다

‘정수근 3차례 만취폭행’ KBO 징계-복귀 반복
최진행 스테로이드·2009년 삼성 인터넷도박 등
선수들 인성교육과 안이한 징계원칙 변화 필요


철학자 니체는 인간을 ‘푸줏간 앞의 개’에 비유했다. 눈앞의 고기를 먹고 싶은 욕망과 푸줏간 주인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할지 모르는 공포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 심리를 압축한 표현이다. 프로야구선수도 인간인지라 술, 도박, 이성, 약물의 유혹과 부와 명예가 보장된 공인이라는 사회적 지위 사이에서 번민한다. 적발 시 법적·금전적 징계와 여론의 지탄을 받음에도 선수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계속 연루되는 근본적 바탕에는 욕망과 더불어 ‘나는 안 걸리겠지’, ‘걸려도 잠시만 자숙하면 괜찮겠지’라는 불감증이 자리한다.

● 빈약한 원칙에 근거한 ‘여론재판’의 폐해


법에도 소위 ‘감정’이 있다. 사건 당시의 여론에 따라 가중처벌과 정상참작이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야구는 인기를 먹고 사는 속성상, 원칙보다 법감정에 치중한 경향이 강했다. 그러다보니 온정적·미온적 대처가 잦았고, 그 폐해로 사건이 잊을 만하면 반복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야구계에 강하다.

대표적 사례가 전 롯데 선수 정수근의 징계였다. 정수근은 2004년 7월, 2008년 7월, 2009년 9월 3차례에 걸쳐 술에 취한 채 폭행사건에 연루돼 중징계를 받았다. 최초로 사건이 터졌을 때 KBO가 내린 징계는 무기한 출장정지였다. 그러나 슬그머니 복귀를 허용했고, 두 번째로 물의를 일으키자 이번에는 무기한 실격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KBO와 롯데는 놀랍게도 이마저도 채 1년이 안돼 풀어줬다. 그러다 결국 정수근이 3번째 사건에 연루되자 KBO와 롯데는 궁지에 몰렸다. 무기한 실격 처분을 동일선수에게 두 번 내리는 희대의 일이 벌어졌다. 당시 KBO의 권위는 훼손됐고, 롯데는 그룹 이미지까지 타격을 받았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삼성 일부 선수의 해외원정도박 혐의도 그 뿌리는 2009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 채태인, LG 오상민 등이 인터넷도박을 한 것으로 밝혀져 벌금형을 받았다. KBO가 내린 징계는 5경기 출장정지, 제재금 200만원, 봉사활동 48시간이었다. 당시 선수들 사이에서 “(징계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돈이 없어서 도박을 못한다”는 뼈 있는 농담이 돌았다. 음주운전에 대한 징계도 갈수록 강해지고 있지만, 2003년까지만 해도 제재금 300만원에 5경기 출장정지의 솜방망이 처벌 수준이었다. 한화 최진행은 올해 스테로이드 복용이 적발돼 KBO로부터 30경기 출장정지를 받았는데, 정작 한화 구단의 추가 징계는 없었다. 그나마 그 전에는 10경기 출장정지 또는 엄중경고 수준이었다.

이기는 야구선수에서 위대한 야구선수로!

프로야구선수협회 박충식 사무총장은 4일 “선수협 총회를 열어서 물의 시 징계 가이드라인을 만들 예정이다. 그 가이드라인에 따라 징계를 받을 수 있도록 KBO나 구단들과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단국대 스포츠경영학과 전용배 교수는 “야구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승리지상주의에 매몰돼 ‘억압’ 속에 살았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책임에 소홀한 면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야구 잘하고, 돈 잘 벌면 끝이라는 ‘졸부근성’을 넘어 어떻게 사회적 존중을 끌어낼 수 있는지를 선수들 스스로 고민해야 할 때라는 얘기다.

NC와 SK는 불미스런 사건이 잘 안 터지는 구단으로 꼽힌다. 선수 영입 시 인성을 중시하고, 프런트와 선수단의 교감이 잘 이뤄진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전 교수는 “인성을 교육으로 고칠 수는 없지만 효과는 분명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현역에서 은퇴한 KBSN스포츠 안치용 해설위원은 “선수들은 유혹에 취약하다. 유명해질수록 돈 만지는 사람들과 알 기회가 많아진다. 그들은 야구선수와 술자리를 한다는 자랑을 할 수 있기에 스폰서가 되고 싶어 한다. 선수들은 비싼 술을 얻어 마시다 도박 등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밝혔다. 젊고 미혼인 선수일수록 더 위험하다. 안 위원은 “선수 스스로 절제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후배 선수들에게 ‘눈앞의 조그만 유혹에 현혹되지 말라’는 얘기를 건네주고 싶다. 그것을 뿌리치면 더 큰 경제적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 선배들의 ‘야구를 길게 보라’는 말에는 그런 뜻도 담겨 있다”고 조언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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