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개조예산 거부한 ‘문고리 권력’ 이재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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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운영위 예산심사소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인 위민관을 재배치하는 설계용역 비용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자”고 청와대에 제안했다. 대통령과 보좌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위민관으로 이전하거나 본관에 보좌진의 사무실을 두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은 “대통령과 보좌진 간 소통에는 지금도 문제가 없다”면서 “공간 재배치를 하면 대체 사무실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에 1년 동안 검토해 2017년 예산에 반영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거부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과 보좌진이 근무하는 위민1, 2관은 500여 m 떨어져 있다. 수석·비서관 등 참모들이 본관으로 가는 데 걸으면 10분 이상 걸리고 급하면 자동차를 이용해야 한다. 검문소를 통과해 2층 계단을 오르고 긴 복도를 지나 넓은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서면 엄숙한 분위기에 눌려 대통령에게 할 말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한다. 청와대가 이 제안을 물리친 이유는 짐작이 간다. 대통령과 비서진 간에 소통이 잘 안 된다는 것을 박근혜 대통령부터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의 집무 공간인 백악관 웨스트윙의 오벌오피스는 양쪽으로 부통령실 선임고문실 비서실장실 국토안보보좌관실 대변인실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소통이 가능한 공간 배치다. 대통령이 수시로 문을 열고 나와 참모들과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피자를 시켜 함께 먹기도 한다. 2009년 1월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드나드는 비서진에게 “집무실에 드러누워 자는 애견 ‘보’를 밟아 비명을 지르는 일이 잦으니 주의해 달라”는 영(令)을 내렸을 정도다.

반면 청와대는 장관 수석들조차 대통령을 수시로 편하게 만나기 어렵게 돼 있다.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 사건 때나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때 참모들과 박 대통령 사이에 즉각 대면보고가 이뤄지지 못한 것도 청와대의 소통 환경과 관련이 깊다고 봐야 한다. 이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부터 보좌한 ‘문고리 권력 3인방’ 중 한 명이지만 이런 결정을 혼자서 내리진 못했을 것이다. 대선 후보 시절에는 청와대 공간 재배치에 긍정적이던 박 대통령도 막상 청와대에 들어간 뒤 생각이 달라진 셈이다.
#이재만#오벌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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