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이 도덕적 기준과 평가에 미치는 영향 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4일 11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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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우리의 행동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사람들은 보통 타인을 판단할 때 도덕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으며 자신의 도덕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도덕적 기준과 평가에 빈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미국 다트머스대 이샤 샤르마 교수 연구팀이 89명의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대학생 피실험자들에게 두 개의 과제를 연속해 수행토록 했다. 첫 번째 과제에서는 슬롯머신을 작동해 보라고 요구했다. 이 때 대학생 절반은 2.5달러를 벌고 나머지 반은 2.5달러를 잃도록 슬롯모신을 설계했다. 이로써 경제적 빈곤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냈다. 이후 두 번째 과제에서는 컴퓨터 스크린에 보이는 박스 안의 좌우구간 점들을 센 후 점들이 더 많은 쪽을 지적하도록 했다. 이 때 왼쪽이 더 많다고 답하면 0.5센트를, 오른쪽이라고 지적하면 5센트를 주는 식으로 실험을 설계했다. 즉, 실제 어느 쪽에 점들의 개수가 많은지 사실 여부를 말하는 것과 상관없이 무조건 오른쪽이라고 답하면 더 큰 보상을 준 것이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부정(비도덕적 행위)을 저지를 수 있는 상황을 조성했다.

실험 결과 피험자들은 2.5달러를 벌었든 잃었든 상관없이, 즉 경제적 빈곤 여부에 상관없이 두 그룹 모두에서 부정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특히 경제적 빈곤의 상황에 처한 그룹(2.5달러를 잃은 그룹)이 다른 그룹(2.5달러를 번 그룹)에 비해 두 배 이상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이어지는 실험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범법자와 그렇지 않은 범법자를 재판관의 입장에서 판결하게 했다. 그 결과 경제적 빈곤 상태에 처한 재판관 그룹이 그렇지 않은 재판관 그룹보다 범법자에게 훨씬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특히 범법행위가 불공정한 처우의 결과로 생긴 경제적 빈곤을 타파해 보려는 노력이라고 여겼을 때 더욱 관대해졌다.

가난은 죄도 아니고 비도덕적 행위의 산물도 아니다. 하지만 가난은 도덕적 잣대를 변화시켜 비도덕적 행위를 조장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가난은 대부분 상황에 의해 주어지고 만들어지며 확대된다. 따라서 가난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대처하고 치유해야 할 불완전한 시스템의 부산물이다.

곽승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swkwag@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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