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패스트 패션 명품과 밤샘 줄서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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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루스탱은 2011년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발맹’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된 흑인 디자이너다. 보르도 태생으로 한 살 때 백인 가정으로 입양된 그는 에스모드 졸업 후 로베르토 카발리를 거쳐 2009년 발맹과 인연을 맺었다. 2년 뒤, 경력도 일천한 스물다섯 살짜리 유색인종 출신이 패션 명가의 지휘봉을 맡자 콧대 높은 파리 패션계가 발칵 뒤집혔다.

▷반발을 잠재운 것은 루스탱의 실력이었다. 디자이너 피에르 발맹(1914∼1982)이 떠난 뒤 부진을 면치 못하던 발맹은 루스탱 덕분에 꼰대 같은 이미지를 벗고 지구촌 트렌드 세터가 주목하는 브랜드로 거듭났다. 46세의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로페즈가 아찔하게 감각적인 발맹을 입고 루스탱과 연인처럼 찍은 잡지 표지사진에선 나이 차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그가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인 H&M과 협업으로 선보이는 한정판 제품의 출시(5일)를 앞두고 국내 소비자들 반응이 뜨겁다. 세계 3700여 개 매장 중 한국의 4곳을 포함한 250개 매장과 온라인에서 판다는데 명동 매장 앞에 지난달 30일부터 밤샘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캠핑용 침낭을 가져온 사람에 ‘줄 서는 알바생’까지 등장했다.

▷H&M, 유니클로 같은 SPA 브랜드가 발 빠르게 유행을 반영해 저렴한 가격에 내놓은 옷을 ‘패스트 패션’이라 한다. 패스트 패션의 화두로 협업이 주목받은 것은 2004년 H&M이 샤넬의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와 협업 컬렉션을 내놓으면서부터였다. SPA 브랜드가 큰 수익도 올리기 힘든 협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싸구려 이미지도 벗고 브랜드 인지도도 높일 수 있어서일 것이다. 일본의 ‘국민복’ 유니클로도 질 샌더와 협업했다. 디자이너로선 대중과 가까이하면서도 아무나 가까이할 수 없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 좋다. 소비자에겐 유명 디자이너 제품을 훨씬 싼 가격에 살 수 있고, ‘한정판’이란 점도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그렇더라도 내 돈 주고 옷 사면서 쌀쌀한 날씨에 며칠 밤씩 노숙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발맹#h&m#s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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