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활의 시장과 자유]한국 ‘짝퉁 진보’와 日 공산당의 차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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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 논설위원
권순활 논설위원
1922년 창당된 일본공산당은 중의원 21석, 참의원 8석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자민당 민주당 공명당에 이은 원내 제4당이다. 오랫동안 제1야당의 자리를 지키던 사회당(현 사민당)이 냉전 붕괴 후 당세(黨勢)가 몰락한 반면 일본공산당은 작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8석에서 21석으로 늘렸다.

시이 가즈오 일본공산당 위원장은 얼마 전 아베 신조 정권에 반대하는 야권 연대가 실현되면 당 강령에 있는 미일(美日) 안보조약 폐기 및 자위대 해산을 거론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혁명 포기와 생활정치로의 변신, 2004년 당 강령에서 ‘전위당’과 ‘노동자계급 권력’ 문구 삭제에 이은 현실주의 노선으로의 전환이다. 다만 민주당이 “공산당 지지층에서 2만 표를 얻더라도 우리 지지층에서 3만 표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여 실제로 선거연대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돈 잡음-막말 없는 일본공산당


과거 혁명과 무장투쟁을 내걸었던 일본공산당에 대한 거부감은 지금도 적지 않지만 불법 자금과 거리가 먼 깨끗한 정당 이미지는 큰 자산이다. 재정은 당원들이 내는 당비와, 발행 부수 130만 부의 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 구독료에 의존한다. 기업이나 외부 단체의 헌금은 일절 받지 않으며 정치자금 모금 파티도 열지 않는다.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린 사례도 찾기 어렵다.

의원들의 대(對)정부 질의는 날카롭지만 수준 이하의 막말이나 욕설을 입에 담는 일은 없다. 폭력과도 거리가 멀다. 1983년 아웅산 테러사건 이후 북한과 교류를 끊었고 3대 세습과 인권유린에 비판적이다.

일본공산당의 노선은 한국의 ‘자칭 진보’와 닮은 점이 있지만 실제 행태는 차이가 많다. 돈 잡음이 없는 일본공산당과 달리 한국에서는 현직 국무총리 재직 때 버젓이 공관에서 뇌물을 받아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된 한명숙 씨 같은 사람이 눈에 띈다. 경제정의를 외치고 대기업을 비난하면서 뒤로는 천문학적 후원금을 챙기는 일도 일본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 정치권, 교육계, 문화계의 ‘자칭 진보’ 중에는 대한민국 건국과 부국(富國)의 대통령들을 혹평하지 않으면 성에 안 차면서도 수많은 주민을 굶주림과 죽음으로 몰아넣은 북한 전체주의 권력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사람들이 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막말과 욕설, 폭력에 대한 무신경, ‘남이 하면 스캔들, 내가 하면 로맨스’ 식의 이중 잣대도 자주 눈에 띈다.

좌파라고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뉴레프트(신좌파)’를 내걸고 사회민주당 창당을 추진하는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 고임금 대기업과 공기업 귀족노조의 폐해를 예리하게 지적하는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같은 이들은 높이 평가한다. 좌파 진영의 주역들이 이런 합리적 인사들이 아니라 종합적 식견과 도덕성에서 함량 미달인 ‘짝퉁 진보’들이 많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한국 좌파 행태 확 달라져야

나는 ‘재·보선은 집권여당의 무덤’이라는 정치권의 오랜 속설이 잇달아 깨지게 만든 1등 공신이 야당을 쥐락펴락하는 정치권 안팎의 ‘자칭 진보’라고 본다. 여당도 마음에는 안 들지만 ‘짝퉁 진보’에 염증과 불안을 느끼는 국민이 늘어난 것이 이런 이변을 낳은 게 아닐까. 일부 한국형 좌파의 잘못된 행태가 달라지지 않으면 정권의 대안세력이 돼야 할 야권의 미래, 나아가 한국의 앞날에도 오랫동안 짙은 그늘을 남길 공산이 크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좌파#일본#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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