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쳐도 구단이 막아준다? 선수 사생활 관리의 함정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1월 4일 05시 45분


■ 프로야구 도덕성을 되찾자

2. 사생활 침해 vs 구단의 관리

잘 나가는 선수일수록 도덕적 해이 심각
인권 침해 소지에도 ‘CCTV 통제’ 유혹

최근 SNS 문제까지 대두…관리에 한계
강도 높은 징계로 선수들 의식 전환 시급


소6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현실적으로 한국프로야구는 대기업의 이미지 사업이다. 우승하거나 인기를 얻으면 적자를 봐도 괜찮다는 얘기다. 그러나 2015년을 거치며 이제 프로야구에는 한 가지 의무가 더 추가됐다. 바로 ‘도덕성’이다.

야구계 한 인사는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터진 삼성 라이온즈 일부 선수들의 해외원정도박 혐의를 두고 “전력 위주의 팀 운영이 빚은 참사”라고 표현했다. 이 관계자는 “대기업 산하 야구단은 그룹 광고대행사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삼성 야구단만 하더라도 제일기획의 우산 아래로 들어간다. 야구단이 그룹의 브랜드 이미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선수 1명의 일탈이 기업 이미지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프로야구선수의 도덕성은 팀, 그룹, 더 나아가 KBO리그 전체 이미지를 좌우하는 요소로 떠올랐다.

● “인성교육으로 인성이 바뀌나?” 야구단의 고충

구단들은 신인선수가 입단하면 기본적으로 기숙사에 넣는다. 지방 A구단은 고졸신인의 경우 4∼5년 경력이 쌓일 때까지 자동차를 사지 않도록 권장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술과의 전쟁’에서 비롯된다. 합숙을 하지 않으면 술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고, 음주운전으로 연결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사고가 터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숙소에 들어가 자기 전, 코치에게 휴대폰 인증샷을 보내도록 ‘관리’ 받은 B구단 K선수는 결국 음주운전사고로 물의를 일으켜 구단을 허탈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인증샷만 보내고 몰래 빠져나가 술을 마신 것이다. 결국 완벽한 선수 관리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특히 인적 네트워크가 촘촘한 지방에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팬들에게 노출되기 쉽다.

야구단 관계자는 “선수들에게 교육을 지속적으로 시킨다. 심지어 심리학 박사를 초빙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구단도 ‘교육으로 선수가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진 않다. 게다가 야구를 잘하는 선수들일수록 ‘나 없으면 안 되니 사고를 쳐도 구단이 막아주겠지’라는 안이함이 강하다. 그러나 야구단의 선수관리 마인드는 선수 위주에서 팀, 기업 이미지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제 선수 1명이 중요한 시대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야구단이기에 일탈에 대한 제재는 점점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 CCTV의 유혹에 흔들렸던 야구단들

인성이 올바르게 형성되지 못한 선수가 프로팀에 입단했다고 하루아침에 인성이 바뀔 리 없다. 그렇다면 근본적 처방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 얼마나 인생을 망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것이다. C구단 관계자는 “요즘 선수들은 이해관계에 민감하다. 자기 행동에 따라 얼마나 손해가 나는 줄 알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에는 구단들이 관공서, 경찰과 ‘인맥’을 대고 있었지만 이제 꿈같은 얘기다. 이 관계자는 “보도 경쟁이 치열하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발달한 세상이다. 한번 바깥에 알려지면 동시다발적으로 터진다. 이제 구단이 할 수 있는 것은 강한 징계뿐”이라고 주장했다.

메이저리거들은 자기가 받는 연봉과 사회적 지위를 알고 있기에 커리어를 스스로 지키려고 한다. 일본야구계는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지니고 있어 스캔들에 관대한 편이었지만, 최근 요미우리가 소속 선수의 야구도박 사건에 대처하는 자세에서 알 수 있듯 엄벌주의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비밀경찰을 두거나 CC(폐쇄회로)TV로 숙소를 감시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지난해 롯데가 홍역을 치렀듯 인권침해라는 범법소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 ‘롯데 사태’가 터지기 전, 지방 D구단은 도박 우려 때문에 CCTV 설치를 검토하다 구단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커져 철회한 적이 있었다. 그 대신 선수들에게 ‘도박 적발 시 임의탈퇴 처분을 받는다’는 각서까지 받았다. 관리책임을 맡은 야구단 처지에선 물의를 일으켜 그룹에 누를 끼치기 전에 CCTV로라도 선수들을 ‘관리’하고픈 유혹에 흔들리는 것이다. 인권과 조직관리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 ‘관리의 사각지대’ 2군이 더 위험하다!

삼성 일부 선수들의 해외원정도박 혐의에 대해 한 야구인은 “불감증이 더 문제”라고 정리했다. 아직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걸리지만 않으면 도박을 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선수단은 물론 구단 전체로까지 전파된 데서 이런 일이 터진 것이라는 지적이다.

수도권 E구단 관계자는 “흔히 구단이 갑이고 선수가 을이라 생각하는데, 실제 그렇지는 않다”고 말했다. 프런트의 선수 통제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하소연이다. 이 구단은 선수 스카우트를 할 때, 평판 조사까지 활용한다. 단순 야구실력뿐 아니라 팀 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이기적 성향의 선수, 술과 도박 등 범죄를 전파할 수 있는 선수를 가린다. 후자는 영입에서 제외한다”고 설명했다.

알려지기는 유명선수가 파급력이 더 강하지만, 사실 구단은 1군보다 2군 선수 관리가 더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무엇이 범죄인지, 물의를 일으켰을 때 사회적 파급이 어떤지 상대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교적 극성팬의 접근이 쉽다. 팬의 유혹에 약해질 위험성도 더 크다. KIA 윤완주의 ‘일베 용어 사용 파문’에서 알 수 있듯 SNS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이 없어 더 위태롭다.

● 여자 문제와 SNS의 결합은 핵폭탄의 뇌관

과거에는 감독이 선수 관리를 전담했다. ‘심야에 선수 방에 감독이 들이닥쳤다’, ‘선수의 여자 문제를 감독이 나서서 중재해줬다’는 얘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또 프런트 직원이 새벽에 경찰서로 출근해 자기 팀 선수를 몰래 빼오는 것이 일상처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아날로그식 선수 관리는 불가능하다. 선수 숫자가 많아져 한계가 뚜렷하다.

구단들은 선수의 SNS라는 ‘난적’과도 싸워야 한다. 지방 F구단 관계자는 “선수 SNS를 일일이 다 볼 수 없다. 가급적 하지 말라고 하지만 금지시킬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구단의 관점에서 SNS가 무서운 이유는 이를 통해 팬과 선수의 바람직하지 못한 스킨십이 생길 수 있는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kt 장성우의 스캔들처럼 극단적 케이스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팬들이 선수와 개인적으로 만난 사적인 일을 SNS에 올리면 공적인 일로 성질이 바뀌게 된다. 이것이 부적절한 처신으로 비쳐지면 선수 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룹과 야구계 전체로 악영향이 파급된다.

KBO가 사회적 물의까지도 징계하는 근거

‘KBO가 무슨 권리로 장성우의 사생활을 징계하느냐’는 일각의 시각에 대해 KBO 자문변호사인 최원현 변호사는 “KBO는 사단법인이다. 즉, 야구 종사자들이 모여 이익을 도모하는 집단이다. 여기서도 나름의 규율이 있는데, 그것이 야구규약이다. 선수들이 계약할 때, 야구규약을 따르겠다는 의무가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이는 곧 야구계에 직·간접적 명예 실추를 일으킬 때 처벌을 받겠다는 동의”라고 설명했다. 국가가 정한 법과 별개로, 회사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를 저지르면 사원이 사규와 내규에 따라 징계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최 변호사는 “kt 장성우 건도 그런 맥락이다. 장성우의 여자친구가 문제를 촉발시킨 것이지, 선수 본인이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명예훼손죄로 KBO가 징계를 내린 것이 아니다. 다만 장성우의 행위에서 비롯돼 사회적으로 문제가 커지고 시끄러워졌기 때문에 징계 사유가 된다”고 밝혔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