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불리하면 감추는 외교당국, 대통령도 속이는 것 아닌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4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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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근 한중 정상회담, 한중일 정상회의,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민감한 사안을 제외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일 한일 회담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국과 중국의 갈등 현안인 남중국해 문제를 거론한 것도 국민은 일본 언론을 통해서 알게 됐다. 아베 총리가 “중국의 인공섬 12해리 내에 미국 구축함이 진입한 것은 국제법에 부합해 (일본은) 즉각 지지를 표명했다”며 “열려 있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바다를 지키기 위해 한국이나 미국과 연대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한중 회담 때도 리커창 총리가 “한중 해양경계 획정 회담을 되도록 빨리 개시하자”고 촉구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발표했으나 한국 정부는 공개하지 않았다. 한중이 중첩되는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경계를 획정하는 협상에 들어가면 양국의 견해차로 이어도의 관할권을 둘러싼 심각한 마찰이 생길 수도 있는 사안이다. 뒤늦게 외교부는 “지난해 7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 문제를 제기한 이후 양국이 실무적으론 논의를 해왔고 우리가 불리한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믿기 어렵다. 그렇다면 굳이 발표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정상회담 브리핑에서 민감한 부분을 제외한 것이 처음도 아니다. 작년에도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정상회담 때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과 한반도 광복 70주년을 2015년에 공동 기념하자”고 시 국가주석이 제안한 사실을 정부는 중국, 일본 언론이 보도하고 난 다음 날에야 시인했다.

정상회담은 공동 발표 내용을 사전에 조율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도 중국과 일본이 따로 정상회담 내용을 공개한 것은 이들 사안에 상당한 의미가 있고, 한국은 의견이 달랐다는 것을 뜻한다. 더구나 남중국해 문제는 한국 정부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듯한 사안이어서 개운치 않다. 중국이 해양경계 획정을 언급한 것 역시 남중국해와 관련된 미중 패권경쟁에서 한국이 어느 한쪽에 서는 것을 막으려는 전략적 접근일 수 있다.

정부는 대통령의 정상회담 성과를 강조하면서 누(累)가 될 부분은 덮어두려고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공개하는 것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이다. 진실을 감추는 참모진이라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릴 수도 있다. 이 정부가 더 감춘 것이 없는지 국민은 찜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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