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연극배우를 ‘1000만 배우’로 키운 대학로 ‘별들의 고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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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산실 극단 ‘차이무’ 창단 20돌 뒷이야기

극단 ‘차이무’의 20주년 기념 공연 신작 ‘꼬리솜 이야기’의 출연 배우들. 이 작품은 극단 창단 멤버인 이상우 예술감독이 극작과 연출을 맡았고, 드라마 ‘미생’에서 오과장으로 등장한 배우 이성민(뒷줄 왼쪽)과 차이무 대표 민복기(뒷줄 오른쪽) 등이 참여한다. 극단 차이무 제공
극단 ‘차이무’의 20주년 기념 공연 신작 ‘꼬리솜 이야기’의 출연 배우들. 이 작품은 극단 창단 멤버인 이상우 예술감독이 극작과 연출을 맡았고, 드라마 ‘미생’에서 오과장으로 등장한 배우 이성민(뒷줄 왼쪽)과 차이무 대표 민복기(뒷줄 오른쪽) 등이 참여한다. 극단 차이무 제공
《 명계남, 문성근, 강신일, 고(故) 박광정, 유오성, 송강호, 이성민, 문소리, 전혜진 등 연기파 배우들이 영화판에서 인정받기 전 서울 대학로에서 살다시피 활동한 극단이 있다. ‘차원 이동 무대선(船)’의 준말인 ‘차이무’ 극단이다. 스타가 된 이들은 연기의 고향이라는 ‘차이무’를 잊지 못해 종종 대학로를 찾는다. ‘1000만 배우 송강호가 대학로에 등장한 날은 차이무의 공연 뒤풀이가 있는 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스타의 산실인 극단 ‘차이무’가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았다. 20년간 차이무가 장수한 힘과 뒷얘기 등을 들어봤다. 》
○ 극단 차이무의 동력 ‘배우’

창립 멤버인 이상우 예술감독(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에 따르면 차이무는 얼결에 만들어졌다. 이 감독은 당시 조그마한 오피스텔에 개인 사무실을 갖고 있었다. 당시 가난한 연극배우여서 갈 데도 없고 밥 먹을 데도 없던 송강호 류태호 유오성은 만날 이 감독 사무실에 와 살았다. 이 감독은 “1995년 7월 8일 북한강가 어느 막걸리 집에서 술판을 벌였는데 ‘우리끼리 연극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순식간에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설립 자금은 이 감독과 문성근이 각각 1000만 원씩 냈다. 이 돈으로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 무대에 올려진 첫 작품은 송강호 류태호 문성근 주연의 연극 ‘플레이 랜드’. 이 감독은 “쫄딱 망했다”며 웃었다.

차이무는 단원 오디션을 하지 않았다. ‘배우 중심의 연극을 만든다’는 소문이 나자 대학로 배우들이 하나둘씩 제 발로 들어왔다. 영화감독 여균동도 차이무의 단원이었다. 이 감독은 “차이무에는 배우들 의견이 반영된 공연 대본이 따로 있다. 배우들은 극단을 개개인의 창작집단으로 여긴다”며 “공연 시작 전 무대 뒤에서 배우들이 외치는 구호가 20년째 ‘놀자 놀자 놀자’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차이무 출신 배우들의 소속감은 강하다. 2010년 차이무는 대학로 아트원시어터3관을 2년간 임차해 ‘차이무 극장’으로 운영했다. 비용은 강신일 송강호 문소리 등 극단 출신 배우들이 우유업체 치즈 광고로 번 돈(3억 원)을 기부받아 충당했다. 차이무의 수입 분배 구조도 독특하다. 차이무 민복기 대표는 “주·조연에 상관없이 수익금을 인원수대로 나눌 때도 있다”며 “간혹 선배들은 교통비만 받고 후배들이 더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2003년 극단 차이무의 대표작 ‘비언소’에 출연한 배우 류승범(오른쪽)과 당시 연출을 맡은 고 박광정. 동아일보DB
2003년 극단 차이무의 대표작 ‘비언소’에 출연한 배우 류승범(오른쪽)과 당시 연출을 맡은 고 박광정. 동아일보DB
○ 유머를 잃지 않는 사회풍자 연극

차이무의 대표작은 ‘비언소’ ‘늘근 도둑 이야기’ ‘거기’ ‘양덕원 이야기’ 등이다. 차이무는 ‘재기 발랄한 풍자극’으로 유명하다. 평론가 출신인 김윤철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차이무는 시대 상황 표현과 희극적 연극미를 잘 결합시켰다”고 평가했다. 특히 1990년대 대학로 연극 흥행 신화로 꼽히는 연극 ‘비언소’는 네 칸짜리 화장실을 배경으로 27∼30개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사회풍자극으로 재공연 때마다 당시 사회상을 담아 ‘살아 있는 연극’이란 호평을 받았다. 2003년 이 감독에 이어 단원 출신 민복기가 대표직을 이어받은 뒤 따뜻한 휴먼드라마 작품도 다수 제작했다.

차이무가 창단 20주년을 맞아 이 감독의 ‘꼬리솜 이야기’(6∼29일)와 민 대표의 ‘원 파인 데이’(12월 4일∼내년 1월 3일) 등 신작 2편과 대표작 ‘양덕원 이야기’(내년 1월 8∼31일)를 차례로 대학로예술마당 2관에 올린다. ‘꼬리솜 이야기’는 700년 전 가상의 나라 ‘꼬리솜’이 배경인 역사물이고, ‘원 파인 데이’는 동네 개에게 물린 아주머니의 기막힌 하루를 그린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차이무#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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