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광표]고려대의 실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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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정책사회부장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최근 고려대가 의미 있는 실험을 시작했다. 다름 아닌 입시제도 개편이다.

고려대는 2018학년도 입시에서 학교추천 전형을 정원의 50%까지 늘리기로 했다. 학교추천 전형은 교사들의 종합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학교장이 학생을 추천하면 고려대에 응시할 수 있는 제도다. 고려대는 이와 함께 논술 전형을 폐지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위주의 정시 전형과 특기자 전형은 줄이기로 했다. 논술 전형을 폐지한 것은 논술이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판단에서다.

고려대의 입시제도 개편은 수능과 같은 성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류전형과 면접의 비중을 높여 학생의 인성, 성실성과 열정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고려대는 개편의 의미에 대해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 미래형 인재를 발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좀 더 쉽게 말하면 “서울 강남 등 특정 지역이나 특목고 자사고에 편중되지 않고 일반고나 지방 고교 등 여건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도 문호를 넓히겠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 여건이 좋지 않더라도 열정이 있고 성실한 학생들,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학생들의 가능성을 발굴해 그들에게 입학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의 성적보다 인성과 성실성이 대학에서 더 높은 성취를 이끌어낸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고려대의 개편안에 대한 비판도 있다. 우선, 학교별 실력 차를 왜 제대로 반영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쉽게 말하면 “일반고는 특목고 자사고보다 공부를 못하는데 왜 똑같은 인원을 추천받느냐”는 것이다. 또한 일반고 간의 경쟁, 내신 경쟁이 치열해지고 면접을 위한 사교육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대의(大義)와 공공선(公共善)의 측면에서 보면 고려대의 입시제도 개편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교육에 여러 종류의 가치와 지향점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핵심은 공존(共存)이어야 한다. 더불어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교육이다. 이는 곧 약자에 대한 배려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은데, 정성껏 자식을 키우고 싶은데 가난과 같은 열악한 여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모의 경제적 조건과 사회적 지위가 우리 아이들의 대학입시 결과와 미래를 좌우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공존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심층면접을 위한 사교육 성행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 문제는 대학 측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사교육을 통해 면접기술을 배운 학생들을 면접관이 걸러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사교육에 의존해 면접기술을 배운 학생을 걸러내면 곧바로 소문이 날 것이고, 수험생과 학부모들도 면접 사교육의 불필요함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고려대의 입시제도 개편안은 학생과 교육현장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여건과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품성이 바르고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들은 더 큰 꿈을 펼쳐 우리 사회에 기여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고려대는 이에 앞서 성적 우수 학생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집중하겠다는 정책도 발표한 바 있다. 모두 배려와 공존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이 기본적인 교육철학을 애써 외면해왔다. 경쟁력과 수월성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고려대의 이번 시도는 용기 있는 실험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우리 사회와 대학들이 그 용기에 화답해야 할 때다.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kplee@donga.com
#고려대#입시 개편#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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