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워야 행복한 법, 내 삶엔 장난기가 많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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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일 세계차품평대회 여는 전남 강진 백련사 회주 여연 스님

10월 27일 가을비가 지나간 백련사에서 웃음 짓고 있는 여연 스님은 “해인사(선거) 일은 남 탓을 하기 전에 내가 잘 못했어”라고 했다. 스님처럼 솔솔직 담백하게 자신의 허물과 속마음을 털어놓는 출가자는 드물다. 강진=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10월 27일 가을비가 지나간 백련사에서 웃음 짓고 있는 여연 스님은 “해인사(선거) 일은 남 탓을 하기 전에 내가 잘 못했어”라고 했다. 스님처럼 솔솔직 담백하게 자신의 허물과 속마음을 털어놓는 출가자는 드물다. 강진=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차와 선을 하나로 꿰뚫는 ‘다선일미(茶禪一味)’를 추구한 초의선사의 맥을 잇고 있는 전남 강진 백련사 회주 여연 스님(67). 평생 차와 사람 향기 속에서 살아 온 그의 삶에 최근 ‘사건’이 있었다. 해인사 주지에 뜻을 낸 것. 하지만 주지 선출은 후보들 간 갈등 속에 진흙탕 싸움이라는 비판과 함께 8월 일단락됐고 스님은 뜻을 못 이뤘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여연 스님은 1971년 혜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불교신문 주간과 조계종 기획실장 등을 지냈다. 특히 1991년부터 18년간 일지암에 주석하며 차 연구와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 지난달 27일 가을비가 막 지나간 백련사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해 가급적 표현을 그대로 살렸다.》
―아니, 차향에 빠져 사는 분이 주지 선거에는 왜?

“요즘 해인사 문화가 거칠게 바뀌었는데 철학과 사유가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과거 해인지 같은 출판 운동이나 해외와 교류도 하고. 해인사는 성철 스님뿐 아니라 다른 큰스님도 많다. 영암, 자운, 혜암, 일타, 지관 스님…. 이런 분들에 대해 세미나도 열고 사상사를 정리하고 싶었다. 이래야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문중 싸움을 줄일 수 있다. 해인사 주지 자리의 ‘맛’도 보고 싶었고.”

―너무 솔직한 말 아닌지요.

“우습고 창피하지만 (주지) 하고 싶더라. 어디 행사에서 맨 끝에 부르면 속상해. 속으로 불경 구절을 외워도 소용없어. 대혜 선사는 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심(大疑心)이 일어나 큰 공부를 했다는데 난 ‘짜잔하게’ 가끔 꿈속에서 해인사가 나타나더라. 허허.”

스님의 거침없는 말에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스님이 따라주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일지암에는 왜 가게 됐나요.

“로비스트로 유명했던 박동선 씨가 차를 몰라 외국에서 망신당한 뒤 일지암 건립에 도움을 줬어. 그런데 살 사람이 없어 비어 있다 내가 엉겁결에 들어간 거야. 다산이 18년 유배 생활을 했는데 나도 스스로 유배하며 버틴 거지.”

―그런 일지암을 홀연 떠나 2008년 백련사로 왔는데요.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이 일조했지.”

―무슨 말씀인지?

“유홍준, 공이 많지만 세 가지는 확실하게 버려 놓았어. 답사기에 일지암이 소개됐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찾아오던지 살 수가 없는 거야. 안에 있으면 막 ‘츰(침)으로 창을 뚫어’.”

―나머지 둘은 뭡니까?

“뭐긴. 나랑 유선여관 살던 황구지. 사람 탓에 새끼를 산에 가서 낳았잖아. 나중 불평했더니 후속 답사기에 스님과 황구에게 미안하다고 썼더라. 그것도 그래. 나랑 황구가 같은 반열이야? 족보가 같나.”(웃음)

―차를 처음 접했을 때와 지금 느끼는 맛은 어떤지요.

“소싯적에는 차 맛을 몰랐지. 남들이 좋다니까 그런 척했지. 이제는 조금 알지. 차를 너무 전통이나 고급스러움으로 접근하면 어려워져. 그야말로 차 마시고 밥 먹는다는 다반사(茶飯事)로 여겨야지. 요즘에는 ‘차=소통, 커뮤니케이션’ 아닌가 생각해. 머리 터지게 싸워도 차 한잔 나눌 때는 대화하고 차분해지잖아.”

―제3회 세계차품평대회 및 제8회 대한민국차품평대회(5∼8일·광주·전남 보성군) 공동대회장을 맡았는데요. 하이라이트는 뭔가요?


“세계 15개국에서 대단한 티 마스터들이 참여해서 차 품평회를 하는 게 큰 볼 거리야. 품평회와 전시, 체험 모두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차 하시는 분이 커피에 와인까지?

“내 삶에는 장난기가 많아. 즐거움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아. 밥 먹거나 음악 들을 때도 그렇지, 어떻게 똑같은 것만 하나. 밥 먹다 짜장면에 죽도 먹을 수 있는 게지. 내가 클래식 좋아하지만 매일 베토벤만 들을 수 있어? 가끔 팝이랑 재즈도 듣고 비 오는 날은 장사익도 들어야지.”

강진=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여연스님#세계차#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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