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카페]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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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에세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사진)은 무라카미 하루키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그런 책일지 모른다. 하지만 하루키 팬들에게는 축복과도 같은 작품이다.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소설가로서의 하루키의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제는 말할 때가 됐다”는 듯 진지하고 솔직한 태도로 소설과 소설가, 그리고 오리지널리티(독창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구어체로 친근하게 털어놓는다.

그가 서른을 앞두고 프로야구 경기를 보다 문득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결혼하고 술집을 차린 뒤 은행 대출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20대를 보냈다는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청춘의 날을 즐길 여유 같은 건 거의 없었다.” 그래도 틈만 나면 음악을 듣고 책을 읽었다.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뒤엔 자신만의 문체를 찾기 위해 부엌 테이블에서 몇 번이나 원고를 고쳤다.

하루키는 위 세대와 달리 전쟁과 배고픔을 경험하지 않은 자신이 새로운 것을 쓰려면 “필연적으로 가벼우면서도 날렵하고 기동력이 있는 언어와 문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어로 한정된 단어를 사용해 글을 쓴 뒤 번역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문체를 개발했다. “어려운 단어, 멋 부린 표현, 유려한 문체는 하나도 쓰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없어도 되는 콘텐츠를 빼고 ‘뺄셈’을 하는 식으로 단순화·간략화하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기존 스타일에 익숙한 평론가들은 그의 소설에 대해 ‘이런 건 소설이 아니다’, ‘문학이라고 할 수도 없다’, ‘평범한 문체에 가벼운 내용’이라며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하루키가 잡음을 피해 장기간 일본을 떠나 외국에 거주하면서 글을 써야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는 데뷔 후 35년 동안 자신의 스타일을 지키며 소설을 썼다. 처음 글을 썼을 때 느꼈던 ‘즐거움’ 덕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데우고 컴퓨터를 켠 뒤 ‘자, 이제 무엇을 쓰지’라고 생각할 때 정말 행복하다. 쓰는 것이 고통이라고 느낀 적은 한번도 없다.”

하루키 소설은 이제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며 ‘세계의 문학’이 됐다. 올해 예순여섯인 하루키는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도 해마다 거론된다. 평론가들의 비판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불쾌하다는 반응은 독창성의 하나의 조건이다. 비평가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비판받는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고 말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하루키는 일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일까, 아니면 문학사에 남을 대가일까. 그것은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판가름 날 문제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다음과 같다. “독창성이라는 것은 시간의 검증을 거치지 않으면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작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을 하나라도 더 쌓아 올리는 것이다.”

팬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아직도 새벽 5시에 일어나 400자 원고지 10장을 집중해 쓰는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한번도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직 현역이며 발전 도상에 있는 작가다. 전장의 최전방에서 싸우고 살아남아 전진하는 것이 주어진 과제이며 타인의 작품을 읽고 평할 여유는 없다.” 독자들이 지금도 그의 신선한 문체를 즐길 수 있는 것은 하루키가 오늘도 고독 속에서 ‘터프함’을 유지하면서 문학과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하루키#에세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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