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외로움에 갇힌 群衆…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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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그는 결국 고립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인간에게 다른 인간이 다가오지 않으면 고립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라면을 끓이며(김훈·문학동네·2015년) 》

1층에 사는 사람이 바뀐 모양이었다. 그 소식은 한 중년 여성이 휴일 낮 벨을 누르며 “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입니다”라며 무언가를 물어오면서 알게 됐다. 겨우 10가구도 채 안 되는 작은 빌라인데. 이웃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조차 제때 알 수 없었다. 원래 살던 이웃은 어디로 갔을까. 얼마나 여기 살았고 왜 나갔을까.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새로 오신 분은 가족이 몇 명이나 되려나. 잠시 궁금했지만 또 금방 잊게 됐다.

가끔 쪽방촌이나 고시촌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을 기사로 접한다. 이달 13일 대부분의 언론에서 짤막하게 보도한 신림(관악구 대학동) 고시촌의 ‘묻지 마 살인’도 그런 부류다. 고시촌 이웃을 흉기로 살해한 서른다섯 살 용의자는 “(피해자가) 나를 감시하는 프락치다”라며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범인, 피해자를 포함한 고시원 거주자 모두 서로 간 왕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찾아오는 이도 없었다고 한다. 수십 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시촌은 알고 보면 그 방들 모두가 각기 ‘외로운 섬’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이 산문집에서 기자 시절 화재 현장을 취재하면서 불구덩이 속에서 목숨을 잃는 소방관을 여럿 봤다고 한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암흑 속에서 고립된 대원이 어둠을 뚫고 다가오는 동료의 전짓불 빛을 기다리고 있었을 순간을 생각하면서 나는 울음을 참았다”고 했다. ‘다가오는 인기척’이라는 희망이 없었던 소방관의 처지는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비통한 마음을 누르기 쉽지 않다.

불구덩이 속에 갇힌 소방관에게도, 고시촌 낭인에게도 사람의 다가감이 필요하다.

우선 새로 이사 온 이들에게 제대로 인사하러 가야겠다. 마침 어머니가 보내 준 냉장고 속 얼음골 사과가 많이 남았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책속의 이 한줄#외로움#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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