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연패 실패했지만…기록 대신 전통 세운 삼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일 17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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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통합 4연패’를 달성한 삼성 류중일 감독은 “덕장(德將), 복장(福將)보다 지장(智將)으로 불리고 싶다”며 웃었다.

올 시즌 류 감독은 패장(敗將)으로 한국시리즈를 마쳤다. 류 감독은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통합 5연패에 실패해 죄송스럽다. 두산의 우승을 축하한다. 우리의 완패였다”며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기자회견장 밖에서는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2011년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놓친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정규리그를 1위로 마치며 ‘통합 5연패’에 거의 다가갔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한국시리즈 직전 도박 파문으로 이탈한 선발-셋업맨-마무리 투수 ‘빅3’의 부재가 치명적이었다. 삼성다운 야구는 종적을 감췄다. 류 감독은 “결과로 말해야 하는 프로에서 2등은 비참하다”며 쓰라린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류 감독은 “두산 축하하러 가야한다”며 다시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더그아웃으로 돌아간 류 감독은 기뻐하는 두산 선수들을 치켜보다 공식 시상식이 열리자 코칭스태프, 선수들을 불러 3루 쪽에 일렬로 서게 했다. 그리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두산 김태형감독과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삼성 선수단은 20분 넘게 진행된 공식 시상식 내내 자리를 지켰다. 덕분에 우승 구단 선수단만 남아 우승의 기쁨을 나누던 시상식 풍경은 달라졌다. 국내 프로야구에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지는 계기도 됐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낮선 이번 이벤트는 류 감독이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던 일이었다. 2011년 아시아시리즈 우승 때 패배한 소프트뱅크가 보내준 축하에 크게 감동한 류 감독은 평소 “우리 팀이 한국시리즈에서 패해도 공식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상대팀을 축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우승만 해 기회를 잡지 못했던 류 감독은 올해 마침내 행동으로 옮겼다. 비록 통합 5연패는 실패했지만 이날 류 감독이 보인 행동은 그를 한국 야구역사에 남을 명장(名將)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임보미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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