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정치해부학]황우여가 총대 멘 역사전쟁의 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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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박근혜 당선인이 좋아하는 장관 수석들을 보면 대개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약간 흐릿해 보이면서도 할 일을 챙기는 스타일이다.”

2013년 2월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초대 장관·수석 내정자들이 발표됐을 때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사석에서 내놓은 관전평이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와 유정복 안전행정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 등이 그런 사례로 꼽혔다. 어쩌면 비슷한 유형의 자신이 지난해 7월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 기용되리라는 것까지 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2012년 몸싸움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황 부총리와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합작해 만든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은 부딪치는 걸 싫어하는 그의 체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여권 내부에서 경질론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도 황 부총리의 갈등회피적 본능과 무관치 않다.
“인당수 빠지는 심청이 심정”

당초 교육부는 올해 7월까지 국정화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황 부총리는 여론수렴이 필요하다며 의사결정을 자꾸 미루다 이달 12일에야 국정 교과서 행정예고 발표를 했다. 이 과정에서 황 부총리는 “국정화는 불가피한 것이지만 1, 2년 한시적으로 시행하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다가 여권 내부에서 소신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정화 방침을 내부적으로 확정해놓은 이후에도 “다수설 이외에 소수설도 함께 실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다가 역시 국정화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반론에 부닥쳤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지역구(인천 연수)에 학교가 많은 데다 5선 의원 대부분을 교육위원으로 활동해온 황 부총리가 찬반논란이 첨예한 국정화 문제에 발을 담그는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데 대해 “너무 자기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도 적지 않다. 초선의 김태흠 의원이 당대표까지 지낸 황 부총리를 겨냥해 “교육부 장관 갈아치워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김무성 대표가 “그런 소리 나올 만도 하지 않느냐”고 할 정도다.

황 부총리가 요즘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이의 심정으로 국정화 고시확정(다음 달 5일)과 마무리에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를 내보이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황 부총리의 꿈은 내년 총선에서 6선에 올라 국회의장이 되는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그의 인생철학에 딱 맞는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역사교육의 정상화’ 방안으로 천명한 좌편향 교과서 바로잡기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장으로 밀어줄 리 없고 공천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다.
회피해온 보수정권 책임도

황 부총리는 억울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로 저주하고 북한을 감싸는 듯한 좌편향 교과서를 바로잡는 숙제를 집권 5년간 사실상 회피하다시피 한 이명박 정권에도 적잖은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교육 정상화’ 차원에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이 “북핵은 약소국이 당연히 추구할 수밖에 없는 비장의 무기” 운운하는 책을 쓴 사람을 교육문화수석으로 기용한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무상몰수-무상분배 방식의 북한식 토지몰수를 ‘개혁작업’으로 묘사한 국사 교과서의 문제를 설명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역사전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미래가 불투명하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황우여#역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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