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시선]나홀로 거꾸로 가는 정부 국제개발협력사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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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
몇 년 전만 해도 해외원조를 한다며 개발도상국의 오지에 학교 하나 덜렁 짓고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학교를 지어 취학률은 높아졌으나 교재도 없고 교사도 부족해 학교를 몇 년씩 다닌 아이들이 여전히 글을 읽을 줄 모르는 황당한 사례도 숱했다.

지금은 많이 발전해서 건물만 짓고 손 떼는 몇 개월짜리 국제개발협력사업은 거의 없다. 교육을 예로 들면 현지에 상주하는 민간단체들이 최소 3년 이상 학교 건물을 고치고 양질의 교육을 위한 교재를 만들며 교사를 길러낸다.

국제개발협력사업에서 민간단체의 역할은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민간단체들은 개발도상국 정부 주도의 개발에서 배제되기 쉬운 빈곤층 아이들과 여성, 소수자에게 가 닿고, 소외된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을 한다. 9월 유엔개발정상회의가 채택한 ‘지속가능개발목표’가 시민사회와의 파트너십을 중시하고 정부가 작성 중인 ‘제2차 국제개발협력기본계획’에서 민관협력의 확대를 강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정작 정부의 국제개발 민관협력 운영방식은 선진화 흐름에 역행하려 들고 있어서 우려스럽다. 원대한 목표를 세워놓고 실제로는 뒷걸음질치는 형국이랄까. 현재 정부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민관협력사업 예산을 보조금으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그런 예에 해당한다. 정부의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 민간보조사업에 대한 지침 등을 보면 관리와 처벌을 강화하고 보조사업의 확대를 억제하며 규모를 최소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선진국들은 공적개발원조의 10% 이상을 민관협력 방식으로 집행하는데 한국은 2% 수준에 불과한 이 방식마저도 더 줄어들 판이다. ‘축소 지향’인 법과 지침은 민관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정부 정책 방향과도 어긋난다.

또 1년 단위로 운영되고 집행을 엄격히 통제하는 보조금의 성격상 ‘양질의 교육 확대’처럼 장기적 계획이 필요한 국제개발협력사업은 더이상 하기 어렵게 된다. 1년 단위라 해도 회계보고 때문에 실제 사업기간은 7개월 안팎이고, 2년으로 늘려도 보고와 평가를 하느라 사업 중단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과거의 후진적 원조처럼 건물만 덜렁 짓고 마는 식으로 국제개발협력사업이 퇴보할 가능성이 높다. 자연재해로 보건사업이 중단됐는데 현장 수습을 위해 원래 계획에 없던 인력을 추가로 파견하는 등의 융통성도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인건비도 엄격하게 통제하는데 로봇을 투입하지 않는 이상 사람이 하는 일에 어떻게 인건비를 쓰지 않을 수 있는지 요령부득이다. 과연 이것이 정부가 ‘국제개발협력 선진화’를 말하면서 원하는 모습일까?

기금을 투명하게 쓰지 못하는 민간단체는 규제받아야 옳다. 그러나 큰 혼란에도 불구하고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보조금 전환을 관철시키려 하는 정부를 보면 그 속내가 궁금해진다. 겉으로는 시민사회와의 협력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통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사업본부장
#국제개발협력사업#정부#해외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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