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허웅 이종현… ‘농구인 2세’ 전성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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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근 전 감독은 남매가 프로행
김진-유도훈-김승기 감독도 자녀들이 중-고-대학 선수

“허재와 전주원을 결혼시키라우. 기럼 대단한 선수가 나오지 안캈어?”

1993년 5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제1회 동아시아대회에 여자 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박건연 MBC 해설위원이 북한 선수단 단장에게 들은 얘기다. 과거 북한이나 동유럽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선수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선수끼리 결혼을 시키는 일이 많았다. 소질이 뛰어난 2세가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북한 관계자의 조언(?)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었다. 허재 전 KCC 감독은 당시 유부남이었기 때문이다. 허 전 감독은 그해 8월 큰아들 허웅을 얻었다. 엄마는 농구 선수가 아니었지만 허웅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프로농구 선수가 된 데는 ‘농구대통령’ 아버지의 피만으로도 충분했다.

농구인 2세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호근 전 삼성생명 감독의 아들 이동엽과 딸 이민지는 각각 삼성과 신한은행의 지명을 받았다. 김화순 동주여고 코치의 딸 신재영도 신한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내년 남녀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꼽히는 이종현과 박지수의 아버지도 농구 선수 출신이다.

양원준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사무총장은 요즘 지인들로부터 “노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고교에 다니는 아들 둘 모두 농구를 잘하기 때문이다. 부상으로 일찍 은퇴해 프런트의 길을 걸었지만 그도 실력을 인정받았던 선수 출신이다.

LG 김진, 전자랜드 유도훈, KGC 김승기 감독 등 농구 하는 자녀를 둔 현역 사령탑도 많다. 아들 둘이 각각 중고교에서 농구를 하고 있는 김승기 감독은 “큰아들은 농구를 시킬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키가 컸다. 혹시나 해서 테스트를 해 봤더니 곧잘 하더라. 둘째는 어릴 때부터 농구를 하고 싶어 했다. 농구를 자주 접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농구인 2세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위원은 “예전에는 농구 선수라는 직업이 별로 안정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프로가 정착하면서 만족하는 선수가 많아졌다. 종목 특성상 키가 커야 하기 때문에 농구인 2세들은 이런 면에서 유리한 데다 소질도 물려받는다”고 말했다.

대를 이어 농구를 하는 게 좋은 점만 있지는 않다. 한 농구인은 “모 구단 감독은 선배의 아들을 뽑아 놓고 잘 쓰지 않았다. 이전까지 좋았던 사이가 틀어졌다. 편한 선후배에서 지도자와 학부모의 관계가 된 뒤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농구인이 꽤 있다”고 말했다.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이승현#허웅#이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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