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시한폭탄 ‘世代갈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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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기 연금-주택-일자리 놓고 ‘제로섬 생존게임’

20일(현지 시간) 그리스 아테네에서 만난 은퇴한 유조선 선장 코스타스 파파야나키 씨(68)는 “3년 전에는 ‘해운업종사자연금’에서 매달 1880유로(약 235만 원)를 받았다. 그때가 좋았다”라고 했다. 연금개혁 초기였던 2012년에는 상황이 그나마 나았다는 뜻이다. 올해 파파야나키 씨가 받는 연금액은 월 1100유로(약 138만 원). 그는 “내가 받을 연금을 젊은 세대가 월급으로 가져가는 셈이다. 왜 내가 희생해야 하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그리스의 젊은 세대는 고령층을 위해 연금 보험료를 너무 많이 내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 사는 재스민 스톤 씨(20)는 올해 2월 치솟은 월세 때문에 런던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자 거리의 항의집회에 참가했다. 영국 정부가 최근 노년층 연금을 늘리는 대신 청년을 위한 주택보조금을 줄이면서 청년층의 반발이 격해진 것이다. 아테네 시내에서는 매일 연금 축소와 관련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재정위기를 기점으로 세대갈등이 짙어지면서 빈곤으로 내몰리는 청년층도 늘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 천주교 봉사단체인 ‘빈자를 위한 프란치스코 성자회’가 지난해 후원한 빈민층 2만6495명 가운데 이탈리아인이 3438명이나 됐다. 과거에 찾아볼 수 없던 현상이다. 이 단체의 마리나 나바 대외협력부장은 “전에는 이민자, 노령층이 주로 무료급식을 받았는데 요즘엔 이탈리아 젊은이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청장년층이 일할 의욕을 잃으면서 노년층이 젊은이를 돌보는 ‘맘모네(Mammone)’ 현상도 확산되고 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장기 불황으로 축소된 경제적 ‘파이’를 어떻게 나누느냐를 놓고 세대 갈등이 폭발하는 세계 각국의 상황을 심층 취재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그리스 독일 스웨덴 영국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등을 찾았다. 연금 등 복지 문제에서 시작된 청년과 중장년층의 갈등이 주택, 일자리 분야로 확산돼 결국 정치 지형까지 바꾸는 모습을 이들 나라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세대갈등은 폭발 직전이다. 올 5월 정치권이 노년층을 위해 국민연금 지급액을 늘리려 하자 2030세대가 보험료 인상을 우려하며 반발했다. 또 임금피크제로 청년들을 위해 일자리를 나누자는 노동개혁안에 기성세대들이 저항하고 있다. 젊은층은 집값 하락을 고대하지만 집 한 채가 자산의 대부분인 중장년층은 집값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한다.

이런 세대 간 갈등을 중재해야 할 정치권은 대중적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행보로 세대 간 갈등을 더 부추기고 있다. 정부의 갈등 조정 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마땅한 해법은 없는 상황이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정치권의 인기영합 정책이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머리를 맞대 갈등 완화 방안을 짜내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머지않아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별취재팀
#지구촌#시한폭탄#생존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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