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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매거진]“지갑 하나 만드는데 4, 5년 정성… 몇십 년 사용할 물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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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매거진]“지갑 하나 만드는데 4, 5년 정성… 몇십 년 사용할 물건이니까요”

손가인기자 입력 2015-10-29 03:00수정 2015-10-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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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팅거’의 로버트 에팅거 대표 인터뷰
로버트 에팅거 씨(60)는 청록색 가죽으로 안을 덧댄 명함 지갑을 꺼내 보였다. 한 땀 한 땀 마감된 지갑 모서리를 손끝으로 조심스레 쓸어보기도 했다. 꼭 소개하고 싶은 제품이 있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제품을 꺼내는 에팅거 씨의 표정과 손짓에서 80여 년 이어온 가족기업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지갑과 가방 등 가죽 소품으로 영국 왕실의 인증을 받은 브랜드 ‘에팅거’의 대표 로버트 에팅거 씨와 16일 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났다. 아버지 제리 에팅거는 1934년 고급 선물을 만드는 회사를 설립했다. 아버지의 공장에서 풍기는 가죽 냄새를 사랑했던 소년 로버트는 가족의 성을 딴 ‘에팅거’ 회사의 대표가 됐다.

―가업을 잇고 있다. 집안의 역사를 물려받았는데 어떤가.


1934년에 아버지가 가죽 회사를 시작했고 내가 그 다음으로 책임지게 됐다. 25세부터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30세 좀 넘어서 정식으로 회사를 물려받았다. 그 전에 12∼13년 정도 일을 배웠다. 가끔씩 이 회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울 때도 있었지만 늘 하는 일인 것처럼 어릴 때부터 접해 와서인지 굉장히 행복했다. 어떻게 하면 더 성공적으로 키울 수 있을지 생각하면 설레기도 했다.
크게보기가죽 냄새를 사랑한 소년은 80여 년 전통의 가죽 잡화 회사 대표가 됐다. 로버트 에팅거 대표는 셔츠 소매의 커프스 버튼을 보여주면서 “이것도 가죽으로 만든 제품”이라며 소년처럼 웃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늘 가죽과 함께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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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무렵부터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용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서 일을 했다. 제품 포장 박스를 만드는 일부터 했다. 그 공장에서 풍겨 오던 가죽 냄새가 아직도 생생하다. 몇십 년이 지났지만 공장에 들어서면 나는 가죽 냄새가 정말 좋다.

기계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공장에 가면 바느질 기계와 재단 기계가 있는데 그게 돌아가는 소리도 좋고 움직이는 모습도 신기했다. 기계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제품 공정의 85%를 손으로 만드는데 하나의 물건이 나오기까지 사람과 기계가 어떤 노력을 하는지 구경하는 게 재밌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가죽 제조업에 대해서도 익힌 것 같다.

참고로 우리 제품은 하나를 만드는 데 4, 5년이 걸린다. 기계는 가죽으로 된 물건을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어낼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그 모든 과정을 보고 자랐다.

―에팅거는 영국 왕실의 인증을 받은 브랜드라고 들었다.

영국에서는 다음 국왕으로 왕위를 계승받을 사람에게 웨일스 공이라는 작위를 내린다.(2015년 현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맏아들 찰스 왕세자) 에팅거는 1996년 웨일스 공이 사용할 제품을 제작하는 회사로 공식 인정을 받았고, 그래서 우리 제품에는 ‘Prince of Wales Cipher’의 문장인 세 개의 깃털 모양을 사용할 수 있다. 이 인증은 최소 5년간 웨일스 공이 해당 브랜드의 제품을 구입하고 사용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인증을 받은 브랜드 제품은 곧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인정을 받는다. 이 모양을 사용할 권리를 받는 건 다른 어떤 상 같은 걸 받는 것보다 훨씬 명예로운 것이다.

―그러면 정말 아무나 쓰지 못하는, 대중적이지 않은 제품은 아닌가.

Eighteen to Eighty(18세부터 80세까지). 에팅거의 고객층을 분석해 보면 18세 젊은이부터 80세 노인까지 다양하다. 특히 요즘은 어린 남성 학생들이 많이 구입을 한다. 세대를 초월해서 사랑받는 제품이다. 가격도 정말 널리 알려진 큰 글로벌 브랜드에 비해 저렴하다. 갖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그런 불친절한 제품이 아니다.(에팅거의 대표적인 상품 ‘브라이들 하이드’ 명함지갑은 22만 원대, 반지갑은 33만 원대다.)

―가죽 장인들이 있다고 들었다. 장인들의 작품이면 사용하는 소재도 고급일 것 같은데….

귀가 안 들리거나 앞이 안 보이는 분들과도 함께 일을 한다. 그분들은 촉각이 좋아서 가죽을 만지는 일에 특성화돼 있다. 영국 런던 버밍엄에 있는 공장에는 이분들 말고도 파트별로 수많은 직원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계도 있지만 같은 바느질이라고 해도 기계가 하는 바느질이 있고 손으로 하는 바느질이 있다. 우리 공장에서는 아직도 가죽을 붙일 부분이 있으면 사람이 직접 망치질을 해서 잇는다. 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공장을 기존의 두 배로 늘려서 큰 문제는 없다. 주문 받는 양에 따라 제품을 만드는데 해마다 완성 제품 개수가 다르다. 작은 제품 주문이 많으면 많이 만들 수 있고 손이 많이 가는 큰 가방 같은 제품은 아무래도 제작이 늦다.

지금 이 제품(에팅거의 대표적인 제품 ‘브라이들 하이드’ 명함지갑을 보여줬다)을 들고 지금 우리 공장에 가서 매니저에게 보여주면 어느 장인이 만들었는지 곧바로 알아볼 거다. 기계로 똑같이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다. 다 똑같아 보여도 하나하나 애정을 담아서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란 자부심이 있다. 18세부터 80세까지 모두가 들고 다니는 제품이지만 장인 정신을 담아서 만든 제품이니 소비자들이 ‘나만의 브랜드’, ‘특별한 물건’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브랜드는 제품의 기본이 되는 가죽의 질에 굉장히 깐깐하다. 공장에 가면 가죽을 고르는 장인들이 있다. 3000여 개 가죽을 갖다 놓고 질이 좋은 가죽을 200∼300개 정도 골라서 만든다. 주로 쓰는 가죽은 송아지 가죽과 브라이들(말에게 씌우는 굴레) 가죽이다. 브라이들 가죽은 영국에서 많이 쓰는 소재다.

―영국에서 가죽은 어떤 의미가 있나.

예전 영국에서는 말을 타고 다녔다. 많은 회사가 가죽으로 말 굴레 등 승마용 제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부자들만 타고 다니던 자동차가 점점 확대 보급되면서 많은 가죽 제조 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에팅거는 쭉 이어져 내려온 가죽 제조 기술을 이용해 지갑과 가방을 만들었다.

우리 브랜드의 ‘브라이들’ 제품은 1934년에 만든 제품인데 아직도 인기가 많다. 바깥쪽은 단단한 가죽을 쓰고 안쪽은 부드러운 가죽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승마 제품 만들던 기술을 그대로 가져와 말이 땀을 흘려도 아무런 화학작용이 없는 가죽으로 현대용 지갑을 만든 것이다.

가죽은 영국이나 한국 어디에서도 고급스러우면서도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제품이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영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데, 지갑을 꺼냈는데 가죽 제품이 아니면 상대방이 ‘어?’ 하고 의식할 거다.(웃음)



―영국뿐 아니라 일본 등 아시아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시장별로 추구하는 게 있나.

35개 국가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별로 제품을 다르게 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좋은 제품 하나를 만들어 오랜 시간, 몇십 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에팅거의 철칙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 모던하고 고급스러운 제품으로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가죽 제품을 만든다.

각 시장마다 기능적인 부분의 조사는 철저히 하고 있다. 예를 들여 지갑을 만들었는데 그 나라의 카드가 안 들어간다거나 지폐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어느 나라의 어느 소비자가 사더라도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규격을 조사해서 그 크기대로 제품을 출시한다.

―브랜드가 먼저 소개된 일본에서는 에팅거의 입지가 어떤가.

이번 한국 방문 전에도 일본에 다녀왔다. 에팅거는 일본의 ‘한큐 컴퍼니’가 일 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브리티시 위크’라는 행사에 매번 참여한다. 영국 브랜드를 사랑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한자리에 제품을 모아 선보이고 대표들이 찾아가 직접 소비자를 만나는 행사다.

일본 고객들은 브리티시 위크에서 만난 브랜드의 대표가 제품 박스 위에 사인을 해 주면 굉장히 감격스러워하면서 그 박스를 간직한다고 하더라.(웃음) 작년에는 행사장에 ‘에팅거 뮤지엄’을 설치해 1934년부터 이어져 온 역사의 타임라인을 소비자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에팅거’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일본 명품 일번지 긴자에는 에팅거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고 이세탄, 미쓰코시 같은 대형 백화점 등 170여 개 숍에서도 에팅거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한 번은 일본에서 묵었던 호텔의 어린 벨보이가 내 짐에 붙은 에팅거 플래그를 보고 자기 지갑을 꺼내 보였다. 자기도 에팅거 제품을 쓰고 있단 거였다. 벨보이는 굉장히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는 당신의 팬”이라고 말해 줬다. 뿌듯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우리 제품을 사 줬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영국 시장과 아시아 시장 소비자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나.

전혀 다른 대륙에서 온 ‘유니크’한 브랜드라는 사실이 아시아 시장에서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어딘지 모르게 이국적이면서 고급스러운 제품에 아시아 소비자들이 반응을 한다.

한국보다 먼저 진출한 일본 시장을 예로 들겠다. 일본 소비자들은 제품의 박음질과 마감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핀다. 이런 점 때문에 업계에서는 일본 시장에 들어가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우리 에팅거 제품이 아시아 시장인 일본에서도 잘 팔린다는 것 자체가 제품의 퀄리티가 좋다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국 제품이라는 이국적인 특이성도 일본에서 어필할 수 있는 좋은 장점이다.

―많은 패션·잡화 브랜드가 아시아에 진출할 때 일본 시장을 보고 들어오는데 한국 시장을 타깃으로 잡은 이유가 있나.

사실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은 2007년경이었다. 그때는 브랜드 단독으로 들어오지 않고 다른 한국 잡화 업체와 손잡고 들어왔었지만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2년에 ‘에팅거’라는 이름을 그대로 내세워 돌아왔다. 지금은 호조를 보이고 있는 일본 시장에서도 이름을 알리는 데 5, 6년이 걸렸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급스러운 제품을 사용하는 분위기도 2007년 당시보다 많이 자리 잡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국은 일본보다 ‘오직 명품’만 찾는 분위기가 덜하다. 시장을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한국 소비자들은 좀 더 성숙한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이 있었고, 또 그런 제품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기존에 형성된 가죽 잡화 마켓에도 고급스러운 제품이 많았다. 이런 시장이라면 에팅거 브랜드도 충분히 한국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반짝 유행을 탔다가 사라지는 제품이 아닌, 오랫동안 고객의 손 안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제품을 팔고 싶다. 그래서 다시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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