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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위작 논란 ‘끝없는 쳇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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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위작 논란 ‘끝없는 쳇바퀴’

손택균기자 입력 2015-10-27 03:00수정 2015-10-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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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위작' 유통 화랑 압수수색 뒤… 천경자 화백 사망 소식에 관심 증폭
이우환 화백의 ‘점으로부터’. 서울지방경찰청은 최근 이 작품을 포함한 이 화백의 위작 유통 정황을 포착해 서울 종로구의 한 화랑을 압수수색했다. 감정 전문가들은 “이 화백의 내공을 복제할 수는 없지만 유사품을 그려내는 게 기술적으로 어렵지는 않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돌고 도는 유행처럼 미술계의 관심사가 다시 ‘위작(僞作)’에 쏠렸다. 16일 서울지방경찰청이 이우환 화백의 위작을 유통한 혐의로 서울 종로구의 한 화랑을 압수수색하고부터다. 며칠 뒤 천경자 화백의 사망 소식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1991년 천 화백과 국립현대미술관이 벌인 ‘미인도’ 위작 분쟁이 다시 이슈가 됐다.

위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기사는 숱하게 나왔다. 2009년에는 국내 미술계의 위작 시장 이야기가 영화로도 제작됐다. 위작을 그리는 방법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이번에도 그저 닮은꼴 사건과 수사가 반복되다 잊혀질 뿐일까. 미술품 감정 전문가들은 “상황이 심각하다. 결론을 깨끗이 내고 갈 수 있을지 여부는 이우환 화백의 판단과 선택에 달렸다”고 입을 모았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과 천경자 화백의 위작 논쟁을 일으킨 ‘미인도’. 조악한 상태의 인쇄물을 본 천화백은 “내가 그린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미술관 측은 “3차례의 감정 결과 진품으로 확인됐다”고 맞
섰다. 동아일보DB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그림 수십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압수한 것은 작품 거래 명세가 기록된 장부와 컴퓨터다. 전문가들이 참여한 작품 진위 판정 자료와 미심쩍은 거래의 정황 증거를 확보하기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 화백이 스스로 누차 “내 작품은 위작이 없다”고 밝혀 온 점이다.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대형 갤러리 쪽에서는 “작가가 위작이 없다고 하는데 왜 자꾸 작품 거래에 타격을 주는 잡음이 발생하는지 모르겠다”며 곤란해한다. 이 화백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국내 14개 경매회사를 대상으로 한 거래실적 집계에서 낙찰총액 1위(약 712억 원)에 오른 인기 작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감정 전문가는 “위작으로 뚜렷이 판명 난 그림이 1점만 나와도 시장은 요동친다. 갤러리나 작가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감정가들이 작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거나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식의 시선은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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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베테랑 미술품 감정 전문가는 20∼30명 정도다. 한국화랑협회의 미술품감정위원회 운영위원을 지낸 최병식 경희대 미술학부 교수는 “경험과 수련으로 쌓은 안목에 90% 이상을 의존하고, 나머지 10%의 판단을 위해 재료 분석 등 기계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활용한다”고 말했다. 송향선 한국미술품감정협회 감정위원장은 “과학적 분석을 병원에서 X선 찍는 일에 비유한다면 진위 감정은 의사가 진단을 내리는 일과 같다”고 설명했다. 재료 분석을 통한 객관적 비교 데이터 구축에 치중하는 전문가도 있다. 24년 전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감정에 참여했던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은 “안료 성분을 분석해 작가의 시기별 작업 특징을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미술품 감정이 이론의 여지없는 체계적인 시스템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 전에 작품의 시장 가치가 빠르게 높아지면서 ‘위작 의혹’의 쳇바퀴만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채 끝없이 돌아가는 형국이다. 최병식 교수는 “유럽에는 수천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감정사 조합이 있다. 오직 한 작가만 평생 연구하는 전문가가 수두룩하다. 감정 결과에 대한 보험 등 효율적인 체계가 잡혀 있다”고 말했다.

작품의 정확한 진위 감정을 위해서는 작가 개인사에 대한 상세한 지식, 재료와 기법에 대한 통시적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 스페셜리스트 감정가가 없는 국내 상황에서 믿고 기댈 것은 작가 스스로 참여해 만든 전작 도록뿐이다. 한 공립미술관 대표는 “이우환 화백의 그림은 갤러리나 미술관이 보유했거나 경매에 나온 것이라도 진품이라고 확신할 근거가 없다. 작가가 생전에 전작 도록을 남기고 가느냐 아니냐에 따라 한국 현대미술 시장의 장기적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위작#감정#이우환 화백#천경자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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