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초안한 야외 안치단에 잠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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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신해철 1주기 추모

‘…등불을 들고 여기서 있을게/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와….’

고인을 모신 안치단에는 ‘Here I Stand for You’(1997년 넥스트 싱글)의 가사가 새겨졌다. 벌써 1년. 27일이 신해철의 1주기다.

25일 오후 경기 안성시 유토피아추모관에서 1주기 추모식 및 봉안식이 열렸다. 근처 봉안당에 있던 유골함이 이날 야외 안치단으로 옮겨졌다. 그가 영면할 안치단은 높이 2m, 너비 1.7m의 피라미드형 구조물. 딸 지유 양(9)의 그림이 초안이 됐다. 위쪽에 고인의 동그란 영정이 놓인 것은 “(아빠가) 빛나는 눈동자가 있어서 우릴 보고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아들 동원 군(7)의 바람 때문이다.

‘To 아빠, 아빠 사랑해요∼♥’ ‘아빠, 뭐하고 계세요?’ 안치단 안에 두 자녀의 편지가 놓였다. 네 개의 작은 손이 국화꽃을 바쳤다. 추모식은 송천오 신부가 집전한 미사로 막을 열었다. 부인 윤원희 씨를 비롯한 유족이 앞자리에서 성가를 부르며 눈시울을 훔쳤다. 이어 ‘민물장어의 꿈’을 넥스트 보컬 이현섭이 선창하자 이 자리에 모인 500여 명의 동료와 팬이 따라 불렀다. 이들은 고인이 좋아했던 보라색으로 된 리본을 달았다. 부인 윤 씨는 “지난 1년간 힘든 중에도 너무 많은 사랑을 주신 데 감사드린다. (남편이) 우릴 계속 지켜줄 거라 믿고 있다”고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가수 싸이,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도 조화를 보내 추모의 뜻을 전했다.

앞서 24일 밤 KBS 2TV ‘불후의 명곡’과 JTBC ‘히든싱어’는 신해철 특집으로 구성됐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랜만에 ‘신해철’이 올랐다. 가수와 모창자들이 부른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가 안방극장을 울렸다.

기일(27일)엔 그의 주요 곡을 모아 담은 앨범 ‘Welcome to the Real World’가 LP레코드로 발매된다. 3000장 한정판. 미공개 유작 3곡이 담겼다.

신해철의 노래비는 이르면 30일 그 형태와 내용, 위치가 정해진다. 12월 24일 서울 강북구 번동 북서울꿈의숲 정문 광장에서 제막하는 안이 유력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고인이 1988년 ‘그대에게’를 불러 대학가요제에서 우승한 날로 의견이 모였다. 노래비의 형태와 세부 위치, 내용을 놓고 팬클럽과 의견 차를 좁히고 있다”고 전했다. 북서울꿈의숲 전신은 놀이공원 ‘드림랜드’다. 신해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 노래비에는 넥스트 3집에 실린 ‘세계의 문’ 가사(‘흙먼지 자욱한 찻길을 건너/숨 가쁘게 언덕길을 올라가면/단추공장이 보이는/아카시아 나무 그늘 아래/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가 새겨질 것으로 보인다.

노래비는 신해철의 역동적인 흉상과 문(門)이 추상적으로 결합된 형태로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 팬클럽은 제막에 맞춰 노래비 근처에서 추모 콘서트도 열 계획이다. 당초 예정된 1주기 콘서트는 기일을 넘기게 됐다. 한 공연업계 관계자는 “적절한 투자사와 공연장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27일 앨범에 담길 신곡 ‘Welcome to the Real World’는 웅장한 현악과 질주하는 드럼, 신해철 특유의 선언과 명령형으로 된 희망적인 가사가 합쳐져 ‘해에게서 소년에게’(1997년 넥스트)를 떠오르게 한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눈물은 거짓이 없어/땅에 뿌려진 만큼/너를 자라나게 할 테니….’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안치단#신해철#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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