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R]“당근을 콜라나 감자칩처럼 먹게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How I did it: 농식품회사 ‘볼트하우스팜스’ CEO 제프리 던

세계적 경영 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Harvard Business Review·HBR)에는 매 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How I Did It(나는 어떻게 일했는가)’이라는 코너를 싣고 있다. 일반적인 인터뷰 형식처럼 묻고 답하는 게 아니라, 경영자 본인이 자유롭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서술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코너에는 구글, 듀폰, 시스코시스템스 같은 굴지의 대기업 CEO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회사의 경영자가 나오기도 한다. HBR 10월호에 나온 제프리 던은 볼트하우스팜스라는 농식품 회사의 CEO다. 이 회사는 당근을 주로 판매한다. 코카콜라의 북남미 담당 사장이었던 던은 2008년 한 사모펀드의 요청으로 낯선 분야인 농산물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근은 흔한 채소다. 맛있다고 당근만 찾아먹는 사람은 흔치 않다. 하지만 던은 잘 포장하고 광고하면 당근이 콜라나 감자칩보다 ‘쿨’한 간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당근 주스, 당근 요구르트 등의 신제품을 개발했고 마케팅도 공격적으로 펼쳤다. 이런 생각은 적중했다. 연간 매출은 지난 5년 동안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 2014년 13억8100만 달러(약 1조5000억 원)를 기록했다. 회사는 2012년 15억5000만 달러(약 1조70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거대 식료품 그룹인 캠벨수프에 인수됐다.

볼트하우스팜스의 사례는 흔한 사업 아이템도 어떻게 마케팅하느냐에 따라 스타 상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국어(HBR Korea)판 10월호에 실린 이 사례를 소개한다. 원문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CEO 던의 입을 빌렸다.

○ 불황기에 마케팅 투자를 늘려라

나는 원래 코카콜라에서 20년 일한 청량음료 전문가였다. 서구에서 콜라, 사이다 같은 청량음료는 당 함량이 높아 비만을 유발하는 ‘정크푸드’라는 인식이 강하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청량음료 소비를 제한해야 한다는 시민운동이 벌어질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코카콜라를 마신다. 세계적으로 매일 10억 개가량이 팔린다. 이 회사가 마케팅을 잘하기 때문이다. 나는 2008년 당근 회사인 볼트하우스팜스로 자리를 옮기면서 당근 역시 콜라처럼 대량으로 팔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코카콜라에서 배워온 마케팅 기법을 당근 사업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우선 당근이 들어가는 주스와 스무디를 27종류나 개발했다. 가격은 과감히 낮추고 포장에도 만화 캐릭터를 넣어서 아이들을 유혹했다. 또 당근을 간식처럼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드레싱(소스)과 묶어서 스낵 포장으로 출시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짜먹을 수 있게 당근을 갈아서 튜브에 담기도 했다. 고등학교에는 당근주스 전용 자판기도 놓았다. 청량음료 자판기 옆에 우리 자판기도 나란히 놓아 달라고 부탁했다.

제품군을 늘리는 동시에 수백만 달러를 들여 ‘정크푸드처럼 (당근을) 먹어라’는 TV와 신문 광고 캠페인도 시작했다. 이 광고에서는 미니 당근을 치토스, 도리토스 등 인기 스낵과 익살맞게 비교했다. 사실 이것은 큰 도박이었다. 당시 미국은 금융위기 직후라서 기업들이 광고비를 줄이고 있었다. 우리 회사의 대주주 역시 광고비를 늘리자는 내 제안에 주저했다.

하지만 내가 코카콜라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 경제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투자가 중요하다. 특히 마케팅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 불황기에는 경쟁사들이 모두 긴축재정에 돌입하고 광고단가가 저렴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황기의 마케팅은 평상시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훨씬 크다. 기왕 돈을 쓰려면 불황기에 쓰는 게 낫다.

원래 볼트하우스팜스는 그저 평범한 농산물 업체였다. 1915년 창립부터 내가 부임하기 전까지 90년 넘는 세월 동안 회사가 마케팅에 쓴 돈은 고작해야 1억 원 정도였을 것이다. 농산물은 전통적으로 소비자를 상대로 한 광고를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한 해에 20억 원 이상의 광고홍보비를 쏟아 붓기로 했다. 이 도박은 멋지게 성공했다. 사회 전반적으로 건강한 식생활에 관심이 높아진 것이 도움이 됐다. 광고 캠페인을 시작한 2010년 매출은 전년 대비 13% 올랐다.

○ 콜라 한 캔 가격에 맞춰라

내가 코카콜라에서 배워온 청량음료 업계의 마케팅 철학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접근성(accessibility)이다. 제품의 호감도와 매력도를 높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채소를 먹고 싶도록 유도해야 한다. 아무리 채소가 건강에 좋다고 광고해도 소비자가 본능적으로 손을 뻗지 않으면 소용없다.

당근에 대한 호감도를 높인 대표적인 사례가 채소 튜브다. 어린이들은 보통 생채소를 싫어한다. 하지만 미국 아이들은 튜브 안에 들어 있는 요구르트 제품들을 짜 먹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당근도 잘 갈아서 비슷한 모양의 튜브에 넣으면 싫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기 아동 TV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제품 포장에 넣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두 번째 전략은 가용성(availability)이다. 제품을 소비자들이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엔 우리 제품을 사려면 식료품점에 가야 했지만 지금은 월마트와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와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 그리고 일반 소매점에도 물건을 납품한다. 또 우리 것만 팔지 말고 경쟁사 제품들과 묶어서 진열대를 크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진열 규모가 커져야 유통업체들도 책임감을 갖고 물건을 팔아주기 때문이다.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 전략은 감당할 수 있는 가격(affor-dability)이다. 코카콜라는 싸다. 캔당 1000원 정도다. 그래서 많이 팔린다. 유명 과자업체들도 과자를 작은 봉지에 담아서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가격에 판다. 우리 볼트하우스팜스도 이런 전략을 배웠다. 예를 들어 어린이용 당근 튜브는 개당 40센트(약 450원)에 팔고 있다. 소비자가 채소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하더라도 가격이 비싸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금까지 설명한 ‘3A’ 전략은 내가 근무했던 코카콜라를 비롯한 소프트드링크 업계에서 빌려온 것이다. 물론 코카콜라에 비해 우리 회사의 인지도는 여전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다. 하지만 고객들의 충성도가 높고 그 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정크푸드처럼 먹어라’는 광고는 우리 회사뿐 아니라 신선식품 업계 전체에 힘을 실어줬다. 정크푸드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정크푸드의 마케팅 전략을 사용한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 사회가 좀 더 건강해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hbr#볼트하우스팜스#제프리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