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SK이노베이션, 3분기 깜짝 흑자 비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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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기업 뺨친 ‘스피드’… 정유 3각파도 넘어

유가와 정제 마진, 수요에 따라 유사한 실적을 보이던 정유업계에서 올 3분기(7∼9월) 이례적으로 희비(喜悲)가 엇갈렸다. SK이노베이션이 정유 사업부문에서 1068억 원의 영업 흑자를 거두면서 시장 예상치를 두 배 이상으로 상회하는 총 3639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반면 다른 정유사들은 7, 8월의 정제 마진 부진과 유가 하락, 수요 감소 등의 ‘삼중고(三重苦)’로 인해 정유 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분석된다.

당초 시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정유 사업 역시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했다. 대체로 비슷하게 움직였던 정유업계의 특성 때문이다.

이런 예상을 뛰어넘은 깜짝 실적의 비결로 이른바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업종의 특성을 벗어던졌다는 점이 꼽힌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10∼12월) 악몽 같은 적자(―4702억 원)를 기록한 후 급변하는 석유 시장에 대처하기 위해 정보기술(IT) 기업처럼 빠르고 유연한 체질로 변화를 이뤘다”고 말했다.

3분기 원유 시장에서는 두바이유의 가격이 더 양질의 원유인 브렌트유 가격에 육박하거나 넘어서기도 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두바이유 가격은 국내 대부분의 정유사가 주로 쓰는 중동산 원유의 수입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SK이노베이션은 이 시기에 재빠르게 중동산 원유의 비중을 낮추고 아프리카나 유럽, 남미 등 역외 원유의 비중을 늘렸다. 또 7, 8월 원유 정제마진이 4, 5달러대로 급락하자 원유 수입을 줄이고 중질유(1차 원유 정제 과정에서 배출된 저급유로 다시 고도화 설비를 거쳐 휘발유 등의 석유제품으로 만들어짐)를 긴급 수입해 곧바로 고도화 설비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생산 원가를 낮추기도 했다.

이런 사업 방식은 장기 계약을 통해 원유를 대량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기존의 방식과는 완전히 달라진 점이다. 변화는 지난해 유가 하락 등의 외부 변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37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후부터 시작됐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유가를 직접 움직일 수 없으니 유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초부터 매주 담당 임원들이 참석하는 ‘시장변수검토 회의’를 통해 최신 시황 정보를 공유하고 긴급 원료 도입 등의 사안을 원스톱으로 결정하고 있다.

전 세계 300여 종의 원유 샘플 특성을 분석한 ‘원유 데이터베이스’도 큰 역할을 했다. 최근 완성한 이 데이터베이스는 비교적 국내 설비에 잘 맞는 안전한 중동산 원유만 고집할 필요 없이 다양한 값싼 유종을 들여올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설비와 원유 특성의 불합치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인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를 통해 매년 수백억 원 규모의 수익개선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내년에도 원유 도입 포트폴리오를 전면 재검토할 예정이다. 핵 협상을 타결한 이란의 국제 원유시장 복귀가 확실시되면서 산유국 사이의 시장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발 빠른 대응으로 최적의 원유 도입 방식을 찾겠다는 것이다.

장우석 SK에너지 경영기획실장은 “원유 공급이 과잉인 상황에서 산유국 간의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며 “이런 움직임이 정유업체가 원료를 도입할 때 수익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sk이노베이션#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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