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보고 싶었어요?”… 눈물 쏟아낸 아버지 “소원 풀었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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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 상봉]부녀-남매 상봉 애끊는 사연

아버지 뺨에 입맞춤 20일 금강산에서 시작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남측 딸 이정숙 씨(68·오른쪽)가 북측에서 온 아버지 이흥종 씨(88)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정숙 씨는 두 살 때 아버지와 헤어졌다.
아버지 뺨에 입맞춤 20일 금강산에서 시작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남측 딸 이정숙 씨(68·오른쪽)가 북측에서 온 아버지 이흥종 씨(88)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정숙 씨는 두 살 때 아버지와 헤어졌다.
“아버지, (그동안) 엄마 생각하셨어요?”

“미안해서…. 정말 미안해서….”

이흥종 씨(88)는 6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만난 딸 정숙 씨(68)를 바라보며 흘러내리는 눈물에 목이 메어왔다. 아내가 이미 35년 전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듣고선 가슴이 짓누르는 듯 아팠다. 딸은 입술만 파르르 떨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 안았다. 다른 한 손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손 꼭 잡은 北누나 南동생 남측 김복락 씨(80·오른쪽)가 헤어졌던 북측 누나 김점순 씨(83)를 만나 두 손을 꼭 잡은 채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손 꼭 잡은 北누나 南동생 남측 김복락 씨(80·오른쪽)가 헤어졌던 북측 누나 김점순 씨(83)를 만나 두 손을 꼭 잡은 채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 꿈에 그리던 딸·여동생과의 해후

이날 1회 차 북측 상봉단 가운데 최고령자는 이 씨와 정규현 씨, 채훈식 씨 등 남성 3명이었다. 이들 중 이 씨는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딸 정숙 씨와 여동생 흥옥 씨(80)를 만났다. 흥옥 씨는 북쪽의 오빠가 휠체어를 탄 채 면회소로 들어서는 순간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65년 전 젊었던 오빠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주름살 가득한 오빠는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한 채 한없이 동생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내 딸 정숙 씨가 아버지를 향해 “나 정숙이야”라며 흐느꼈다. 흥종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만 닦아낼 뿐이었다.

정숙 씨는 아버지가 가족을 찾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두 살 때 생이별한 아버지가 살아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보이스피싱을 의심해 경찰에 재차 확인을 한 뒤에야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고 한다.

“아버지, 딸 정숙이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딸 어떻게 생겼어?”

“소원 풀었어….”

“딸 보니까 좋아요?”

딸의 모습을 가슴으로 그리다 해후한 아버지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첫 번째 만남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딸은 비로소 “(아버지) 얼굴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래도 보니까 알겠어. 그게 핏줄인가 봐”라고 소감을 밝혔다.

○ 회한 속에 다시 찾은 직계의 혈육

한 살 때 아버지와 헤어진 손종운 씨(67)는 아버지 권근 씨(83)를 마주하고도 말없이 얼굴만 바라봤다. 이들 부자는 한참이 지나서야 서로를 꽉 껴안은 채 울먹였다. 연신 어깨를 다독이는 아버지에게 종운 씨는 “태어나 아버지의 얼굴을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알아보겠느냐”며 세월의 회한을 토로했다.

옆에 있던 여동생 권분 씨(78)는 권근 씨가 “권분이는 어딨느냐”며 애타게 이름을 부를 때에야 눈물을 쏟아냈다. “내 생전에 오빠 얼굴 못 보는 줄 알았지.” 여동생은 오빠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오열했다. 오빠도 손수건으로 연신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짧은 첫 상봉을 눈물로 시작한 이들은 어쩌면 생전에 다시 찍기 어려울 가족사진 한 장을 남기며 서로를 위로했다.

면회소 한쪽에서는 신연자 씨(65·여)가 북에서 온 아버지 정세환 씨(87)를 바라보며 “우리 아버지가 맞구나”라며 울먹였다. 생후 한 달 만에 소식이 끊겼던 아버지였지만 “(아버지는) 정말 잘생겼었다”고 회상하던 어머니의 말씀을 잊지 않았다. 신 씨의 어머니는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해 이번 상봉에 함께하지 못했다. 신 씨는 갓난아기로만 자신을 기억하는 아버지에게 “이제 나도 할머니가 됐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이번 1회 차 상봉에 참석한 북측 96가족과의 만남 가운데 부자 또는 부녀가 만난 건 모두 다섯 가족에 불과했다.

○ 고령 상봉에 안타까운 ‘묵묵부답’

이날 상봉에서 남측의 김남규 씨(96)는 전쟁 통에 행방불명됐던 막내 여동생 남동 씨(83)를 반세기 넘어서야 만났다. 하지만 김 씨는 몇 해 전 교통사고에 따른 뇌출혈의 후유증으로 대화를 이어가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남동 씨가 옛날 흑백사진을 보여주며 “기억나세요?”라고 물었지만 오빠는 답이 없었다.

여성 최고령자인 권오희 씨(92)는 이날 의붓아들인 이한식 씨(80)를 만났다. 학구열이 높았던 아들이 중학교 교사 시험 합격자 발표를 보고 귀가하던 길에 북으로 끌려갔다는 소식만 들었다. 열흘이 더 지나 집에 도착한 아들의 합격통지서에 아버지는 통곡했다고 한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던 아들은 노년의 중절모 신사가 된 뒤에야 어머니 앞에 섰다.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 / 금강산=공동취재단
#남북#이산가족#이산가족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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