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리포트] 한쪽선 사과문 읽고, 한쪽선 청백전 뛰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0월 21일 05시 45분


20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자체 청백전이 열렸다. 이날 저녁 도박 혐의에 대한 입장 발표를 앞두고 삼성 더그아웃 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대구|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20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자체 청백전이 열렸다. 이날 저녁 도박 혐의에 대한 입장 발표를 앞두고 삼성 더그아웃 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대구|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청백전 등판 예정 투수 2명 급히 교체
김인 사장, 도박 스캔들에 고개 숙여

모두들 차분한 분위기. 밝은 표정으로 인사도 나눴다. 다만 단 하나의 화제는 절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삼성 선수단이 한국시리즈 대비 훈련에 한창이던 20일 오후 대구구장의 풍경이다.

지난 5일간은 삼성에 악몽과도 같았다. 15일 ‘삼성 간판급 선수들이 마카오에서 거액의 원정도박을 한 정황이 포착돼 검찰이 수사 착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최초로 나왔다. 17일에는 ‘경찰도 삼성 선수 2명이 마카오에서 조직폭력배의 자금으로 수억원대 도박을 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해당 선수들의 계좌 압수수색과 통신조회 영장을 발부 받아 원정도박 혐의 및 조직폭력배와의 연계 여부 등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내사 초기 단계다. 그러나 여론은 달랐다. 해당 선수들이 한국시리즈에 출전해선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명확한 수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린 뒤 판단하겠다”던 삼성도 마냥 침묵하기 어려워졌다.

선수단 분위기는 좋을 리 없다. 한 시즌 최고의 무대를 앞둔 시점에 터져 나온 비보에 선수들 전체가 동요될 수 있는 위기였다. 이에 류중일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선수단의 평정심을 유지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삼성의 한 코치는 “모든 선수들은 그저 평소와 똑같이 훈련하고 집중하고 있다. 19일부터 합숙훈련을 시작한 것도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합숙훈련에는 용병 3명을 제외한 28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그러나 이날 대구구장 그라운드 뒤쪽에선 여러 사람이 분주히 움직였다. 삼성 운영팀장과 원정도박 혐의를 받고 있는 선수들이 면담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삼성 안현호 단장이 감독실에서 류 감독과 한참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류 감독은 청백전에 등판할 예정이었던 투수 가운데 2명을 다른 투수로 교체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 구단에선 취재진에게 “대구시민운동장 관리소 건물 내 2층 VIP룸에서 오후 7시30분 중대발표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했다.

삼성 김인 사장이 야구장 바로 옆 건물에서 선수들의 도박 스캔들에 대해 사과하는 동안, 대구구장에는 환하게 라이트가 켜진 채로 예정된 청백전이 진행됐다. 경찰의 내사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든, 한국시리즈는 26일 변함없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테스트해볼 선수들이 많아서 9회까지 다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한쪽에서는 사과 및 입장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다른 한쪽에선 한국시리즈 대비 청백전이 한창이던 날. 사상 최초의 통합 5연패에 도전하는 삼성에는 올해 들어 가장 길고 힘겨운 하루였다.

대구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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