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뒤늦은 대국민 사과…골든타임 놓쳤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10월 21일 05시 45분


한국시리즈에 대비한 삼성의 자체 평가전이 20일 대구구장에서 야간경기로 펼쳐졌다. 그러나 같은 시각 삼성 야구단 김인 사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읽고 있었다. 대구|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한국시리즈에 대비한 삼성의 자체 평가전이 20일 대구구장에서 야간경기로 펼쳐졌다. 그러나 같은 시각 삼성 야구단 김인 사장은 대국민 사과문을 읽고 있었다. 대구|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해외원정도박 사태 안이한 대처 논란

무죄 추정 원칙 고수 ‘늑장 대응’ 아쉬워
여론에 떠밀려 사과…구단 이미지 추락
선수단 관리 오점…KBO 역시 방관 책임


삼성 야구단은 그동안 삼성그룹의 초일류 이미지를 강화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2011시즌부터 한국시리즈 4년, 정규시즌 5년 연속 우승의 위업을 쌓는 동안 삼성 야구단은 놀랍게도 외부의 적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 적재적소의 전력보강, 통 큰 투자와 육성, 프런트와 현장의 소통, 장기 팀 플랜 마련 등 삼성 야구단의 시스템은 곧 1등 삼성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이렇게 강력하고 평화로운 삼성의 ‘한국야구 지배’가 의외의 지점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삼성 주축선수 몇몇이 해외원정도박에 연루됐다는 혐의가 불거졌고, 검찰과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한국시리즈(KS)를 앞두고 터진 악재에 삼성 야구단은 물론 삼성그룹까지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했다.

여기서 의아한 점은 삼성의 대응이다. 의혹이 제기된 이후 여태껏 삼성 야구단과 삼성그룹의 대처는 20일 저녁 입장 발표 때까지 한마디로 ‘무(無)대응’이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양, KS 대비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론이 생각대로 가라앉지 않자 결국 삼성 야구단 김인 사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의혹을 받고 있는 선수들을 한국시리즈에 출전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선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데서 진퇴양난에 처한 삼성의 고민이 읽힌다. 수사가 진행 단계인 상황에서 혐의선수를 먼저 밝히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KS를 하루 앞둔 25일 엔트리가 발표되면 원정도박 혐의 선수들이 누구일지는 자연스럽게 노출될 것이다.

오히려 삼성이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은 김 사장이 밝힌 그대로 ‘선수단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데’있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명성에 흠집이 생긴 것이다. 삼성이 ‘예전부터 이런 의혹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느냐’는 의구심도 남는다. 과거 삼성 선수가 연루된 도박 전력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삼성 야구단이 사태를 가벼이 여기다 일을 키웠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삼성의 안이함은 대국민 사과 시점에서도 드러난다. ‘만에 하나 사실로 밝혀질 수 있는 일이라면 선제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삼성그룹의 신뢰 손상을 최소화하는 길’이었을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삼성이 침묵하는 사이, 대형 포털 사이트에 삼성 라이온즈를 검색하면 ‘도박’이 연관 검색어로 가장 많이 노출됐다. 도박 의혹을 받고 있는 선수의 이름이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기정사실화됐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했을 때, 삼성그룹의 지침을 따라야 할 야구단 프런트가 할 수 있는 수단은 별로 없었을지 모른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입각했을 때, 혐의만으로 KS 엔트리 제외 조치를 결정하는 것이 가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결백하다고 자신하지 않는 한, 적어도 삼성 야구단 차원에서 야구계를 뒤숭숭하게 만든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한 사과는 빨랐어야 했다. 일단 구단 자체적으로 1차적 입장 정리를 분명히 하고, 수사 결론에 따라 2차적 결론을 내려야 했다. ‘삼성이 어쩐 일인지 이번 건에 대해선 골든타임을 흘려보냈다’는 야구계의 지적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KBO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의혹 제기 시점부터 지금까지 삼성을 향해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KBO는 그 어떤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KBO가 삼성의 힘을 과신하고 방관하다가 일을 키웠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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