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팩트] 자궁경부암 백신, ‘남성’도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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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년 10월 20일 14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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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경부암, 대부분 성 매개로 발병 … 남녀 모두 바이러스 감염 막을 필요

‘자궁경부암은 분명 성병입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과거 자궁경부암은 막연히 노화로 인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이와 함께 ‘남성도 여성과 함께 HPV백신을 맞으면 여성이 자궁경부암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추세다.

실제로 자궁경부암은 성병 중 하나로 분류될 수 있다. 성병은 문란한 사람에게 발병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성관계를 통해 얻은 질환을 모두 통칭한다. 자궁은 체부와 경부로 구성되는데 질에 연결된 자궁경부에 발생하는 악성종양이 자궁경부암이다. 세계적으로 2분마다 1명씩, 국내에선 하루에 3명씩 사망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여성암이다. 국내에서는 전체 발병 암 중 4위를 차지한다.

대한산부인과학회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09~2013 주요 수술통계를 분석한 결과 자궁경부암으로 하루에 국내 여성 중 10명이 자궁을 절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암센터는 1999년 이후 자궁경부암 환자는 연평균 3.9%씩 감소하고 있지만 20대만 매년 4.9%씩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궁경부암의 약 80%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원인은 ‘인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virus, HPV)로 본다. 대개 성 접촉으로 감염되며 자궁경부암 환자의 99.7%이상에서 고위험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발견된 것으로 보고돼 있다.

자궁경부암의 주원인인 HPV는 정상적인 성생활을 유지하는 거의 모든 성인에서도 감염될 수 있다. 보통 성접촉을 통해 전염되고 성관계 파트너의 수가 많을수록 HPV 감염률이 유의하게 높아진다. HPV는 100여종이 존재하며 이 중 14가지 남짓이 종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고위험형으로 분류된다. 나머지는 생식기 사마귀 등의 다소 가벼운 질환을 일으키는 저위험형(13종)이거나 미분류군, 고위험추정군 등이다.

HPV에 감염된 경우 당장 심각한 증상이나 건강문제가 유발되지는 않는다. 컨디션이 좋으면 자연히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고위험군 바이러스에 노출된 경우 여성에겐 자궁경부암, 생식기 사마귀인 곤지름(콘딜로마), 질암, 외음부암 등이 유발될 수 있다. 남성의 경우 곤지름, 음경암 등이 발병되기도 하므로 HPV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남성은 여성에 비해 HPV가 큰 병으로 악화되는 경우는 드물다. 김태준 호산여성병원 산부인과 원장은 “HPV는 성별에 관계없이 감염될 수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2명 중 1명 꼴로 감염에 노출되고 있다”며 “성생활로 전염되는 HPV는 신체 특성상 남성이 바이러스를 여성에게 옮기는 슈퍼전파자가 되기 쉽고, 결과적으로 여성의 자궁경부암 발생의 원인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HPV는 체액이 아니라 피부 접촉 등으로 전파되는 만큼 콘돔을 착용해도 예방할 수 없는 게 한계”라고 덧붙였다.

HPV 감염에서 간과하기 쉬운 요인 중 하나가 ‘고위험 남성 파트너’와 성관계를 갖는지의 여부다. 배우자나 연인의 성생활이 여성의 자궁경부암 발생에 밀접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국내 18~28세 남성 중 약 10%가 이미 HPV에 감염돼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남녀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가장 좋은 것은 성관계를 갖기 전 백신을 접종하고 성생활을 시작한 뒤 꾸준히 관련 검진을 받는 것이다. 여성은 자궁경부암검사(PAP smear test)로 HPV의 인체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남성을 대상으로 승인받은 HPV 감염 확인검사는 없다. 성관계를 갖기 전까지는 남성이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여성은 자궁경부 점막을 긁어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기 때문에 HPV DNA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지만, 남성에서는 HPV 감염이 성기 전체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부위의 점막을 긁어서 검사한다고 해서 정확도를 담보할 수 없다. 일부 전문가는 남성도 항문점막에서 항문암 선별검사로 PAP 검사를 매년 시행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김태준 원장은 “원인을 뚜렷이 알 수 없으나 HPV 감염은 남성이 여성보다 흔한 편이고, 결론적으로 HPV 양성암의 위험인자 중 하나로 HPV에 감염된 남성을 꼽을 수 있다”며 “아직까지 HPV 감염에 대한 치료법은 없기 때문에 남녀 모두 백신을 맞으면 자궁경부암 등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호주의 경우 2년 전부터 12~13세 남학생을 대상으로 2110만 달러를 투입해 HPV 예방백신을 무료로 접종토록 했다. 남성에게 백신을 접종해 여성의 자궁경부암 발생률을 낮추고, 남학생들은 곤지름 등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에서다.

호주는 2007년부터 전 세계 최초로 4가 HPV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에 도입, 12~26세 여성을 대상으로 HPV백신 접종을 지원해왔다. 이후 ‘남성이 슈퍼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연구에 남학생도 HPV 국가 백신접종 프로그램에 포함시켰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호주가 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에 도입한 이후 2년 만에 자국 18세 미만 여성의 자궁경부암 전 단계인 고등급 상피내 종양 위험이 74%나 감소했다. 긍정적인 결과에 호주 정부는 지난해부터 14~15세 사이의 남학생도 백신 접종 대상에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곤지름 등 생식기사마귀 발병 여부도 백신을 맞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서 발병률이 달라졌다. 2004~2014년 총 10년 동안 8만1939명을 관찰한 결과 국가필수예방접종 대상이 아닌 32세 이상의 여성의 생식기사마귀 발병률은 두배 가까이 증가 추세를 보인 반면, 접종을 받았던 21세 이하 여성의 발병률은 2004~2005년 18.4%에서 2013~2014년에 1%로 크게 감소했다.

호주에서는 HPV백신 접종을 받은 21세 미만 여성의 생식기사마귀 발병률이 접종 프로그램 시행 전 보다 약 90%까지 감소함과 동시에 남성들의 유병률과 감염률까지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

의료전문가들은 호주의 사례를 두고 국가 차원의 바이러스 감염관리의 모범사례라며 높이 평가하고 있다. 최근엔 영국, 미국 등 전세계 50개국 이상도 질병 예방을 통한 사회적 이익을 고려해 국가 예방접종 프로그램에 HPV백신을 등록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성의 건강을 위해 굳이 백신을 맞겠다는 남성은 드물다. 우선 비용 자체가 부담스럽다는 게 첫 번째다. 또 국내서 HPV백신은 ‘자궁경부암 백신’으로 홍보돼 여성을 위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도 상당수다. 하지만 이는 남성이 맞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남성의 곤지름과 항문암 등을 예방할 수 있어 무작정 기피할 이유가 없다.

대학생 한모 씨(25)는 “HPV백신은 여성이 맞는 주사가 아니냐”며 “남자가 맞으면 왠지 부작용이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어 “1개월 간격으로 3회 접종 시 30만원 이상 큰 돈이 드는 것도 부담이 된다”며 “굳이 맞아야 할 필요성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회사원 김모 씨(29)는 “최근 딸을 출산한 뒤로 여성의 건강에 신경쓰게 됐다”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 아내와 HPV 백신을 맞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궁경부암이 성병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고, 내가 3번 주사를 맞아 아내의 암 발병 확률이 낮아진다면 당연히 접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HPV는 성관계를 매개로 전염되는 만큼 어릴 때 접종하는 게 좋다. 보통 9세 이상부터 맞을 수 있다. 한국도 내년부터 여자어린이를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2016년 예산안에 만 12세 이하 어린이 무료 접종 항목에 만 12세 여아를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백신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국내서는 대개 ‘성경험이 없는 사춘기 이전의 소녀들’만 백신을 접종하면 된다는 분위기이지만 남자아이도 함께 예방해서 나쁠 게 없다.

HPV를 갖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문란한 사람으로 볼 필요는 없다. 바이러스가 체내에 얼마나 오래 남아있는지 여부는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감염됐는지 확인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

하지만 아무래도 성적으로 문란하거나 성매매 경험을 가진 사람일수록 HPV 보유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성경험이 단 한번 뿐이었더라도 상대방으로 인해 바이러스에 감염이 커지기도 한다. 경각심은 갖되 편견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태준 원장은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아직 백신을 지급하지 않는 만큼 당장 HPV 관련 질환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여성은 백신을 접종하고 성생활을 시작한 경우 1년 간격으로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는 게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취재 = 정희원 기자 md@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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