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부터 이산가족 상봉]꿈에서만 수만번 잡았던 손, 오늘에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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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만나려고 65년을 기다렸어요. 내 신랑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하루 앞둔 19일 이순규 씨(85·여)는 6·25전쟁 때 헤어진 남편을 만날 생각에 새색시처럼 상기돼 있었다. 남편 오인세 씨(84)는 단란한 신혼을 즐기던 1950년 북한 인민군에 끌려갔다. 아들 장균 씨(65)가 배 속에 있던 시기였다. ‘금방 돌아오겠지’ 하는 막연한 바람은 37년 전에 접었다. 남편을 만나는 생생한 꿈을 꾼 뒤 매년 음력 8월 3일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최근 남편이 살아 있다는 연락을 받고 밤잠을 설친 이 씨는 아들 내외와 함께 상봉 길에 오른다. 자신과 남편의 이름을 뒷면에 새긴 손목시계를 선물로 준비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뒤로한 채 앞으로 보낼 시간을 기억하자는 취지다.

○ “작년에 죽었다고 통보받았던 오빠가 우릴 찾아”

이날 강원 속초시 한화리조트에 모인 남측 이산가족 상봉자들은 간단한 건강검진과 방북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20∼22일 금강산에서 꿈에도 그리던 북쪽 가족들을 만난다. 24∼26일에는 한국 신청자가 찾은 북쪽 가족을 만나는 2차 행사가 열린다.

65년이란 세월을 견뎌 온 가족들은 감격을 감추지 못 했다. 5월 암 수술을 받은 윤희표 씨(76)는 누나 금순 씨(83)를 만날 생각에 “죽기 전에 한 번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라고 말했다. 사촌 오빠 편히정 씨(84)를 만나러 가는 편숙자 씨(78)는 “오빠 소식을 듣고 반가워서 살점이 벌벌 떨린다. 뼈다구니까(같은 가족이니) 반갑다”며 선물을 쓰다듬었다.

북한의 큰오빠 김용덕 씨(87)가 상봉을 신청해서 참가한 용분 씨(67)는 “제19차(2014년 2월) 이산가족 상봉 때 상봉 신청을 했는데 그때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돌아가셨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돌아가셨다고 통보받았던 그 오빠가 이번에 한국의 가족들을 만나겠다고 상봉을 신청했다는 뜻이다. 이산가족 상봉 때 ‘사망’ ‘생사 확인 불가’로 통보했던 북한의 생사 확인 결과가 부정확할 수 있다는 얘기여서 눈길을 끌었다.

○ 이산가족 상봉은 당국 간 회담의 시험대

20∼26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8·25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에 따른 남북 당국 간 회담의 성패를 가름할 첫 시험대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8·25 합의 두 달 만에 행사가 성사된 만큼 남북 당국 간 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아졌다. 정부는 이번 행사가 잘 마무리되면 북측에 적십자회담을 제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도 북핵 포기와 인권 문제를 거론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달 말 유엔총회 연설을 비난하면서도 이산가족 상봉의 판을 깨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당장 돈이 들어오는 5·24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경협 재개를 원하고 있다. 한국은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북한에 큰돈이 들어가지 않는 사회문화 교류와 인도적 협력으로 폭을 제한할 생각이다. 북한은 비핵화 협상보다 평화협정 체결을 원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 의지를 밝히기를 원한다. 이런 접근법 차이 때문에 남북대화 진전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적십자회담에서도 이산가족 전면 생사 확인, 상봉 정례화, 고향 방문에 북한이 쉽게 응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이날 이산가족들과 만나 “상봉 정례화 등을 통해 더 자주 만나고 고향 방문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북한과 최선을 다해서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 / 우경임 기자

속초=이인모 기자·공동취재단
#이산가족#상봉#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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