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는 그만하면 됐다” 워싱턴 내 지한파 인사들의 충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0일 0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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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는 이제 그만하면 됐다(enough is enough). 양국 간 중장기 과제를 다져나가는 ‘한미동맹 2.0’이 필요한 시점이다.”(빌 브라운 조지타운대 객원교수)

16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은 전통적인 한미 동맹을 대외적으로 재확인하는 데는 성공적이었지만 가시적 성과는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차세대 전투기사업(KFX)의 핵심 기술이전 요구가 묵살됐고,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구호만 요란할 뿐 구체적인 액션 플랜은 이끌어내지는 못한 게 대표적이다. 워싱턴 내 지한파 인사들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이야말로 한미동맹의 외형보다는 내실을 본격적으로 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1980년대 주한미대사관에서 한반도 정보 분석을 담당했던 브라운 교수는 “한미 관계는 ‘오래된 연인’ 같은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말 한마디에 환호하거나 실망하는 단계는 지났다”며 “이제는 한미 동맹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조율에 시간이 걸리는 이슈를 미리 발굴하고 논의를 시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상회담에서 제기된 기후변화, 경제 협력 분야는 양국 실무선에서 치밀하게 검토해 다음 정권에서라도 가시적인 성과는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브라운 교수는 “정상 간의 담판으로 해결할 문제가 있고 각국 전문가들의 노력이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한미 간에는 두 개의 트랙이 공히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덧붙였다.
14일 워싱턴 ‘한미 우호의 밤’ 만찬에서 박 대통령과 마주 앉았던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은 “한미 간에는 군사, 외교 분야를 넘어 교육, 과학, 보건 등 다양한 미래지향적 어젠다에 대처하는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는 그는 “한미 관계는 양국 언론을 통해 일반에 알려지는 것 이상으로 넓고 깊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양국 관계 증진을 위한 새로운 협력 분야를 개척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지한파 인사들은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하는 문제와 관련해 한미 간 다른 영역에서 신뢰와 성과가 쌓이면 자연스런 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미대사는 “기본적으로 미국은 한국이 TPP에 가입하길 여전히 원하고 있다. 한미 양자 이슈 외에 글로벌 이슈에서 폭넓게 상호 협력해 가시적 성과를 내면 한국이 TPP에 가입하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라고 내다봤다.

이번 정상회담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국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한국은 이제부터라도 ‘한미 동맹은 역대 최상’ 류의 구호 말고 긴 호흡으로 대미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점을 이번 정상회담은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에선 19일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을 시작으로 각종 싱크탱크들이 토론회와 세미나를 잇따라 열고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를 분석하고 한미 관계를 진단할 계획이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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